작게 삶으로 039 배우고 싶다

2023.11.07 22:01:41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9 배우고 싶다


《미학 오디세이 1》
진중권 
휴머니스트
1994.1.15.


남들이 쓰는 시를 나도 쓸 수 있을까 싶어, 그러니까 시를 좀 잘 써보려는 마음에 《미학 오디세이 1》를 샀다.

 

여태껏, 가까이 있는 미술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미술을 몰라도 그냥 내 나름대로 느끼면 시나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미학 오디세이 1》를 펴니, ‘에셔’ 그림을 바탕으로 풀어낸다. 꿈과 삶 사이에서 꿈을 넘어 되살아나는 빛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풀어간다. 조각조각 모이는 사람이 조각보처럼 펼치는 이야기마냥 먼 옛날 그림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스 하느님을 짚고, 그리스 철학이나 조각가나 화가나 건축가 이야기를 마치 천을 짜듯 날줄과 씨줄처럼 잇고 여미어 낸다. 

 

여러 길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읽다가 샛길로 빠져 본다. 문득 지난 어느 일을 떠올린다. 우리 집 첫째 아이나 둘째 아이가 학교를 다니던 지난날, 해마다 학년이 바뀔 적에 ‘가정조사’ 같은 종이에 ‘엄마 학력’을 적어야 할 때면, 참 부끄러웠다. ‘엄마 학력’이라는 이름 앞에서 얼마나 조그마했는지, 얼마나 쪼그라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뒤늦게 ‘졸업장’을 따려고 늦깎이로 들어가서 ‘대학교 수업’을 받았고, 그때 첫 수업에서 이키아누스에 다달로스 조각가 이야기, 이스터섬 큰돌 이야기, 줄기세포 이야기, 대체에너지 이야기에 사로잡혔다. ‘아! 대학교에 들어가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구나!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교양을 넓히는구나!’ 하고 여겼다. 그때에는 아직 안동에서 살았는데, 안동에서는 대학교 수업을 받을 수 없어서, 대구에 있는 친척집에서 묵었다. 그때 들은 수업 가운데 피그말리온 이야기도 떠오른다. 스스로 새긴 아가씨한테 반한 이야기였던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던 그즈음에는, 나도 내 나름대로 고요히 바라고 품으면 내 꿈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날도 오늘도 내 꿈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지나온 나날을 돌아보고 생각하다가 《미학 오디세이 1》를 다 읽는다. 책을 덮고서 눈을 감는다. 나는 이 책에서 들려주는 에셔 그림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가지런히 나란히 잇는 무늬를 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빈틈없이 자리를 메우는 무늬는 내 마음속 무엇을 깨우는가? 이 책을 읽었기에 내가 바라는 글이나 시를 잘 쓰는 실마리를 얻었는가?

 

예술가도 철학가도 ‘아름다움’을 말한다.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붓을 쥐어 그리고 칼을 쥐어 새긴다. 예술가도 철학가도 숲(자연)을 보고서 옮긴다. 이른바 ‘모방’이라 할 텐데, 어쩐지 ‘모방’이라고 하니 대단한 듯싶지만, 우리말로는 ‘흉내’나 ‘시늉’이나 ‘따라하기’나 ‘베끼기’ 같다.

 

나는 배우고 싶다. 베끼는 글이 아닌, 배우는 글을 받아들여서 쓰고 싶다.

 


2023. 10. 02.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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