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99] 전기삯

2023.05.28 08:39:37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9] 전기삯

 

전기삯이 오른다. 오월 볕이 칠월 볕 같다. 한여름이 되면 얼마나 뜨거울지 전기삯 걱정에 미리 시름에 잠긴다. 어느 벗이 동생이 꾸리는 가게에서 일을 하는데 여름이면 전기삯이 팔백만 원이 넘게 나온다고 얘기를 했다. “헉!” 소리만 나왔다. 남 얘기 같지만 우리도 만만찮다.

 

지하실은 일층보다 넓지만, 불을 밝히고 모터를 돌리니 삼만 원 덜 낸다. 일층은 제법 낸다. 겨울이면 백만 원쯤 내고 더위가 한창 올라가면 곱이 넘는다. 그렇다고 냉장고 물건을 팔아서 전기삯을 낼 만큼 벌어들이지는 않는다. 앞에서는 이것저것 그나마 팔아서 겨우 남기지만 묵혀서 버리는 값하고 집삯과 전기삯이 큰짐이다. 앞으로 벌고 뒤로 까먹는다는 일이다.

 

우리 가게는 에어콘은 따로 돌리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열어 두어서 시원하다 못해 일하는 우리는 춥다. 앞문이 열릴 적마다 옆문이 열릴 적마다 추울 적에는 찬바람이 세게 들어오고 더울 적에는 뜨거운 바람이 훅 들어온다. 이 바람으로 아무리 냉장고에 있어도 무르거나 맛이 쉽게 간다. 손님이 뜸하면 비닐 가리개를 내린다. 짝은 알면서도 꾸중한다. 손님이 꺼내다가 부딪쳐 가리개가 찢어지는 일보다 손 넣고 꺼내기 어렵다고 쓴소리다. 전기삯이 오른다니 낯을 바꾼다.

 

아침에 나오니 가리개 하나를 달았다. 잘게 잘라 놓은 비닐 가리개를 먼저 하나 사서 단 듯하다. 좋다고 말하니 가리개를 더 사 온다. 차곡차곡 접힌 자국이 났다. 접힌 채로 비닐을 달면 뻣뻣하고, 차가운 바람이 나오면 펴지지 않는다. 밖에 들고 나가서 볕 좋은 자리에 펼쳐 놓는다.

 

나는 서서 일을 한다. 내가 선 자리와 냉장고가 가까워 여름도 춥다. 이 아까운 바람으로 전기삯이 많이 나오는데도 냉장 온도를 낮추지 않더라. 힘들게 내 손길이 닿아 차곡차곡 넣어 두면 손님은 싱싱해서 좋고 나는 나가서 좋다. 하루에 하나씩 달면 이레나 열흘쯤 걸린다. 잘게 찢은 틈이 있어도 가려 놓은 셈이니 찬바람이 안에 머문다. 밖에서 들어오는 더운 바람으로 좀 더우면 천장에 달린 선풍기를 돌리면 되겠지.

 

한 이십만 원 아끼려다 이십만 원 들여 가리개를 샀는데 삯이 얼마나 줄까. 반 넘게는 아낄까. 너무 아까워서 전기삯은 마감날에 낸다. 우리 같은 집에서 얼마나 팔아야 전기삯을 뽑을지 모르겠다. 밑천이 솔솔 든다. 모터가 덜 돌아가면 올여름에는 안 퍼질 테지. 그러면 사람을 안 불러도 되니 돈을 아낄 테고. 전기삯이 팔 원이나 구 원 올라도 전기를 많이 쓰니 목돈이 된다.

 

집도 가게만큼 전기삯이 걱정이다. 찬바람도 덜 돌려야 하지만 겨울이면 전기장판을 때야 따뜻하게 잠을 푹 잔다. 앞으로는 겨울에도 이 온도를 줄여야겠지. 전기를 쓰면 가스를 조금 아꼈는데 이젠 다 아껴야 할 판이다. 따뜻한 옷 하나 껴입는 버릇을 들이고 여름은 찬물을, 겨울에는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면 몸결도 잘 다스릴 수 있으려나.

 

2023. 05. 18.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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