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91] 돌려주기

2023.04.29 09:25:21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1] 돌려주기

 

알림소리에 깼다. 밖에서 물소리가 난다.

“어제 몇 시에 왔어요?”

“집에 오니 두 시쯤 되었더라.”

“많이 안 늦었네. 가서 문 열려고요?”

“내가 문 열어야지. 니도 어제 힘들었잖아.”

“그럼 나 몇 시에 나갈까?”

“나오기는 뭐. 어제 일찍 간다고 애들이 뭘 좀 싸주더라. 명이나물도 한 상자 주데.”

 

보따리를 풀었다. 방울토마토랑 메밀부침이랑 문어가 담겼다. “와 문어 엄청나게 크네. 근데 나 팔이 아파 못 썰어요.” 하고 부침을 데운다.

 

어제 짝이 멀리 가서 저녁에 내가 가게에 나갔다.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가만히 앉을 짬이 없다. 바닥에 놓인 상자를 자르고 비워서 자리를 넓힌다. 삐뚤삐뚤 놓이고 넘어진 물건을 세우다 날짜를 보았다. 깜짝 놀랐다. 팔림날(유통기한)이 지났다.

 

하나씩 들고 본다. 글씨가 너무 작아 날짜가 안 보인다. 사진을 찍어 크게 보고 찾다가 학생을 불러 같이 본다. 아래도 옆도 뒤쪽도 앞쪽도 빼고 나니 쑥 준다. ㅇ과 ㄷ는 담당은 키가 크다. 높고 깊은 자리 물건을 잘 봐달라고 올 적마다 말해도 잔뜩 나온다. ㅇ은 밑에 일꾼이 자주 바뀌고 새로 온 사람도 묵은 걸 빼지 않고 빠진 물건만 넣었다면 ㄷ는 일부러 지난 날짜는 뒤에 감추듯 둔다. 들인 날짜도 다 다르다. 어디서 뺀 물건을 우리 집에 넣었는지 날짜가 다르다. 빼고 담은 바나나 상자가 열여섯이다.

 

손님이 줄기도 하지만, 묵어서 어쩌다 찾는 사람도 발길이 끊긴다는 생각에 부끄럽다. 상자에 담은 사진을 보내 월요일은 내가 직접 반품을 한다고 알렸다. 묵은 값이 쟁이고 새로 넣은 값을 받아갔으니 요즘 짝이 돈돈할 만하다. 내가 손질하는 일을 맡아 하느라 이쪽 일에 손을 놓으니 아지아들도 얼렁뚱땅 넣기에만 마음 쓴다. 아지아들은 눈치 살피고 품값을 깎이지 않으려고 처박아 둔 셈이다. 다그치긴 해도 마음이 안 편다. 워낙 시장이 나빠져서 문을 닫는 집이 많다. 우리도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른다.

 

아직 더 보아야 하는데 밤늦도록 살피고 무거운 걸 옮기느라 온몸이 쑤신다. 마음은 훤한데 이젠 몸이 안 따라 주네. 일꾼 모두 내보내고 우리끼리 하자는데 나는 맡아서 할 힘이 없다. 이달은 나들이가 잦아 돈도 좀 쓰이고 짝 눈치가 보여 풀이 꺾이다가 일 좀 하니 무겁던 마음이 조금씩 홀가분하다.

 

우리는 언제쯤 일에서 벗어날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한 만큼 벌이가 되어도 좋겠건만. 일하는 틈보다 주머니가 너무 가볍다. 벌어서 남 주기 바쁘다. 그나저나 몸을 힘들게 부렸으니 머리는 좀 뚫리려나.

 

2023. 04. 16.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Copyright @배달겨레소리 Corp. All rights reserved.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5길 189-8 등록번호: 경북, 아00595 | 펴낸날 : 2020.6.8 | 펴낸이 : 최석진 | 엮는이 : 박연옥 | 전화번호 : 010-3174-9820 Copyright @배달겨레소리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