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89] 멀리 온 시골

2023.04.19 19:19:50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9] 멀리 온 시골

 

시골 들녘을 달린다. 벼를 키울 흙을 갈아 놨네. 골목에 들어서니 시어머니가 쪼그리고 원추리를 뜯는다.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아도 바로 못 알아본다. 어깨를 감싸고 마당으로 간다. 어머니 키가 내 가슴까지 온다. 작은 몸이 더 작다. 바로 뒤뜰로 갔다. 벌통이 하나뿐이네. 한 사람이 다니던 발자국이 오솔길이 되었다. 풀이 제법 푸르게 올라왔다. 민들레 잔디 제비꽃으로 밭이다. 배롱나무 가지치기를 한다고 따라왔다. 나는 작은 칼을 들고 나물을 한다.

 

달래를 다섯 뿌리를 뽑았다. 밭뚝 따라 쑥이 있을까 돌아본다. 밭둑에 올라온 정구지는 다니기 힘든 시어머니 몫으로 둔다. 어깨를 넘는 마른 풀밭에 쑥이 있다. 쑥을 뜯다가 대파를 몇 뽑는다. 쑥을 욕심내지 않기로 하고 짝이 있는 나무밭으로 오른다.

 

무덤 흙이 파이고 바닥에 빨같통을 묻었다. 멧돼지가 냄새를 맡고 못 오게 하는 약이구나. 나무밭둑에 두릅나무가 있다. 마른 나무처럼 선 나무 끝 새싹을 꺾는다. 여느때 같으면 새싹이 잔뜩 나왔을 텐데 나무가 죽어 가는가. 옷이 가시에 자꾸 걸린다. 나무 사이로 다니며 두릅을 딴다. 두릅이 싹을 내면 우리가 따버리니 가시를 많이 내는지 모른다. 나무에 잎하나 없이 온통 가시뿐이다. 두릅을 한 움큼 따고 나무밭에 올라왔다. 짝이 심은 나무가 많이 자랐다.

 

주목은 그동안 반쯤 말라버렸다. 배롱나무가 높이 자라지 않도록 가지를 잘랐다. 그 곁에 이름 모르는 나무와 무덤 울타리에 많이 심는 측백나무 닮은 나무는 제법 커서 마땅한 자리로 옮기거나 팔아야 할 듯하다. 여기 밭에도 줄기가 마른 큰 풀이 많다. 풀밭 사이로 안개꽃처럼 작은 꽃이 피었다. 쑥도 많다.

 

이 밭은 내가 처음 봤을 적에는 깨밭이었다. 밭을 잘 일궈서 어머님이 깨를 심던 자리인데 손길이 안 닿으니 풀밭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무에 파묻혀 버릴 듯하다. 이 땅은 시어버이 무덤 자리이다. 이 사람도 이다음에 여기에 누울 터이다. 이 밭에서 나온 깨를 장에 내다 팔던 시어머니는 두릅이 나오면 두릅을 팔고 쑥이 나오면 쑥을 팔고 산나물을 팔았다.

 

톱을 가지러 내려왔다. 떨어진 가지를 그러모으려고 까꾸리도 갖고 갔다. 나무밭에 다 왔는데 지팡이로 세우니 목이 뚝 떨어졌다. 나무를 콩콩 박으려고 보니 썩었다. 까꾸리를 들고 도로 내려왔다. 대가 썩어도 내가 부러트렸다고 두 분이 웃는다. 이제 벌통 앞에서 엄나무 새싹을 딴다. 나무가 어려서 그런지 집 뒤에 있는 나무보다 가시가 여리다.

 

잎을 따다가 어머니한테 여쭈었다. “잎을 다 따도 괜찮을까요?” “또 나지 뭐.” 한다. 엄나무도 두릅처럼 가시가 많다. 막 올라온 건 두고 새싹이 벌어진 잎을 땄다. 팔이 닿는 잎은 다 땄다. 꼭대기만 남았는데 한 나무를 따도 얼마 안 된다. 한 번 데쳐 먹을 만큼이다.

 

내가 뜯고 뽑은 쑥 두릅 엄나무잎 대파 쪽파를 사랑방 앞에 두었다. 마가목 싹을 한 줌 따서 오니 어머니가 딴 원추리하고 씀바귀를 한 자루 곁에 두었다. 씀바귀는 어떻게 해 먹지. 줘도 요리 못하는데. 어머니는 채반을 놓고 쪄서 초고추장에 무쳐서 먹으면 신맛이 입맛을 돕는다고 한다. 낮밥을 하려고 들어오니 어머니가 얼린 고기를 내놓았다. 얼린 오뎅도 있고 여린 씀바귀도 한 줌 물에 담겼다. 고기는 양념해서 볶고 오뎅은 파 넣고 볶고 씀바귀는 쪄서 초장에 무친다. 마가목잎은 살짝 데친다. 삶아도 찐득하다. 오늘 낮밥에 봄나물로 잘 먹었다. 봄이 되니 어머니 얼굴이 조금 낫다. 두 분이 귀가 어두워 한 말을 또 해도 서로 기대고 사시는 모습이 어머니를 버티게 하는 듯하다.

 

“가게 비워두고 둘이 같이 오지 말고 번갈아 가면서 자주 다녀가라.”

 

아버님 말씀처럼 시골에서 하룻밤 자면서 집 안팎을 좀 치워야겠다. 욕심내어 갖다 놓은 깔나무는 짐이다. 위채 뒤안에 깔린 걸 다 걷고 흙을 일구어서 꽃을 심든지 텃밭으로 꾸미면 되겠다. 아흔을 바라보는 어머님 아버님 주름진 살림만큼 집 안팎도 늙는다. 우리도 너무 멀리 왔다.

 

2023. 04. 09.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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