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6] 봄나물
집에서 문을 꼭 닫아 놓으니 방이 답답하다는 한 마디를 한다. 짝꿍이 불쑥 하는 말을 듣고 난 뒤로 마음이 갑갑하다. 새달에는 쉬어야지. 내 뜻대로 밀고 나가야지. 모임 나들이가 잦아서 하나를 끊고 둘도 끊어야지. 알맹이가 없는 자리를 멀리하고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도 밀어낸다. 이렇게 마음을 세우기가 힘들다. 차라리 심심할 만큼 혼자가 되자고 다짐해도 헛헛하다. 문득 달리고 싶다.
짝 눈치도 살피지 말자. 도서관에 갈까 수목원으로 갈까. 한 시간 아니 두 시간 달리자. 그래, 며칠 글이 안 올라와서 푸른누리에 잘 지내시느냐 여쭈었지. 어디 아프신가, 봄이 오면 푸른누리에 꽃이 피고 새싹이 올라오면 보기 좋다는 말을 지난겨울에 들었지. 상주로 달린다. 그런데 가는 길만 두 시간이네. 창을 내리니 두엄 냄새가 난다. 짙고 옅은 푸른잎이 봉글봉글 피고 벚꽃이 군데군데 하얗게 피어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가는 길이 꽃길이다. 대구는 벚꽃이 지고 잎이 나는데 여긴 벚꽃이 한창이다. 어린 벚꽃이 좀더 자라 가지가 서로 맞닿으면 꽃굴 같은 길이 더 멋질 듯하다. 골짜기 끝이다. 여긴 바람이 좀 차다. 마당이 온통 노랗다. 민들레꽃이 마당 풀에 딱 붙은 듯하다. 잔디 틈에 제비꽃도 있고 쑥도 자란다. 사과밭에 온 듯하다. 마당에 난 오솔길을 따라 한 바퀴 돈다. 마당이 참하다. 내가 마당을 가지면 꾸미고 싶은, 아니 저절로 피어나는 풀꽃으로 두고 싶은데 여기가 딱 그렇다.
푸른누리 지기는 문경에 산나물 뜯으로 가셨단다. “숲하루 님, 전호나물 알아요?” “네, 울릉도에 많이 나는 나물이잖아요.” 삼십 킬로미터쯤 거리로 오라고 하시는데 구경도 하고 싶은데 일을 헤살하고 싶지 않다. 미리 알리지 않고 온 까닭이기도 하다. 나는 문득 찾아가곤 하느라 사람을 놀라게 한다. 그래도 미리 간다고 말을 하면 무언가에 묶인 듯해서 헛걸음을 생각하고 간다. 혼자 한 바퀴 돌고 오자고. 집 둘레에 농약을 안 치고 골짜기라 깨끗하다고 쑥하고 삼잎을 뜯으라고 한다. 푸른누리에 계신 아주머니가 비닐하고 칼을 챙겨준다. 나는 집 뒤로 갔다. 쑥이 깨끗하다. 뜯고 걷다가 또 뜯는다. 올해는 진달래를 못 봤는데 여기서 보네. 참꽃이 작고 빛깔이 곱다. “하나 따서 먹을게.” 하고 하나 따다 먹는다. 향긋하다. 어디서 부스럭 소리가 난다. 멈칫하고 돌아 나오면서 다시 쑥을 뜯는다.
쑥을 뜯으니 자꾸 뜯는다. 처음에는 한 움큼만 뜯으려고 하다가 자루에 찼다. 쑥이 얼마나 많은지 내 마음에 드는 쑥을 골라 뜯는다. 어른이 되고 나서, 그러니까 멧골 의성집을 떠난 뒤로 아마 서른 몇 해 만에, 깨끗한 쑥을 가장 많이 본 듯하다. 제비꽃도 같이 뜯겼다. 쑥에 보랏빛 꽃이 둘 섞이니 곱다. 쑥을 다 뜯고 이제 삼잎을 뜯는다. 쑥하고 닮았지만 빛깔이 더 푸르고 큼직하다. 이 잎은 꽃대가 남은 뿌리 곁에 났네. 보물찾기 하듯 뜯다가 아주머니가 일러준 개울 건너로 갔다. 여긴 더 많다. 지난겨울에 키가 큰 마른 줄기가 있던 자리이다. 잔디 틈에 아직 갈대처럼 남았다. 이 꽃을 본 적이 있다. 삼잎국화나물을 여기서는 꽃나물이라 하신다. 새싹을 나물로 먹는다고 나물이름이 붙었나. 꽃나물도 한 움큼만 하려다 종이자루 가득 채운다. 나물을 뜯으면 뜯을수록 자꾸 더 뜯고 싶다.
쑥은 한 움큼만 두고 삶는다. 꽃나물도 삶는다. 삶은 쑥은 얼리고 꽃나물은 씻어 시원하게 둔다. 아침에 참기름 넣고 무쳐 먹자. 어떤 맛일까. 삶은 그릇을 꺼내 물을 꼭 짜서 초장에 찍는다. 나물이 살살 녹듯이 부드럽다. 맛이 다르나 시금치처럼 부드럽고 봄빛으로 향긋하다. 처음 먹는다. 나물을 더 집어 물을 짜고 초장에 비벼서 먹는다. 배가 부르다.
쑥과 꽃나물 조금 뜯었다고 온몸이 뻐근하구나. 이른봄에 새싹을 찾아 숲으로 내로 일꾼을 데리고 나물을 하느라 바쁘시구나. 봄철에 나오는 나물을 팔아 한해 살림을 사시는구나. 그래서 글이 늦구나. 멧나물을 뜯는 봄철이 지기한테는 가장 바쁜 철이네. 갑갑할 때에는 하늘만 보아도 숨통이 터지는데, 무턱대로 달리고 엉뚱하게 나물을 뜯는 일이 좋은 나를 문득 돌아보니, 내 쇠뿔도 아주 세다. 하기 싫으면 안 하려고 내 몸을 못살게 굴고 그저 하고 싶은 일은 한걸음에 달려간다. 두 시간 혼자서 놀고, 네 시간 길에서 보내도.
2023. 04. 04.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