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77] 애꾸눈이 되었네

2023.03.06 09:27:24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7] 애꾸눈이 되었네

 

한티재에 가까울수록 눈이 쌓였다. 어제 비가 내렸는데 어느 골짜기에는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다. 차가 다니는 길에는 눈이 녹고 한쪽으로 눈이 쌓였다. 차가 지나간 바퀴 자국이 오솔길 같았다. 나는 좁은 자국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었다. 모퉁이를 꺾으니 내리막길이 나오고 길바닥이 온통 하얗다. 눈을 보니 마음이 하얗게 들뜬다.

 

눈을 뭉쳐서 던졌다. 어떤 눈은 그러모으려니 손이 잘 안 들어가고 또 어떤 눈은 펄펄 눈가루가 날려 안 뭉친다. 맨손에 이리저리 닿으니 뭉칠 만하다. 앞사람 등에 던져 본다. 눈뭉치가 빗나가자 앞사람이 눈을 발로 찬다.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들 뒤에 천천히 간다. 뒤에서 느긋하게 눈하고 노니 재미있다.

 

햇살이 드니 눈이 더 부신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에 쌓인 눈을 먼저 간 사람이 동그랗게 만다. 나도 눈을 꼭꼭 말아서 밀었다. 가랑잎을 떼고 말고 말았다. 크게 굴린 눈은 가랑잎이랑 뒤섞였다. 머리를 얹을 적에 눈사람 눈을 삼을 것을 찾아보았다. 바닥에 올라온 나뭇가지를 당기니 살았다. 다른 가지를 또 당기니 이것도 살았다. 눈을 덮고도 살아 있는 나뭇가지를 차마 꺾지 못했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바닥에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찾을 적에 솔방울을 닮은 방울을 주웠다. 오리방울일까? 잣방울일까?

 

방울 셋이 붙었기에 둘을 따서 눈사람 눈으로 붙여 준다. 방울을 뗀 가지를 떼서 코를 삼아 꽂았다. 남은 방울을 떼려니 잘 안 떨어지길래 가지를 같이 입에 붙였다. 가지가 입꼬리처럼 올라갔다. 코가 삐뚤어도 까맣다. 동그란 눈알에 입까지 붙으니 눈뭉치가 사람처럼 싱긋 웃는다. 팔도 달고 싶은데, 추위를 견딘 나뭇가지를 차마 꺾지를 못했다. 눈사람한테 모자도 씌워주고 목도리도 감아 주고 싶다. 어릴 적에는 못해 보았지만 이제는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작은 눈사람을 이곳에 두고서 눈길을 따라 내려갔다.

 

멧골은 오르는 길인데 이 길은 처음부터 내리막길이다. 더 내려가니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이 넓다. 길바닥에 누워 본다. 눈은 이불처럼 푹신하다. 사람들이 저만치 앞서가고 아무도 없는 길바닥에 혼자 누웠다. 파란하늘이 눈이 되비쳐 더 눈부시다. 어른이 되고서야 눈밭에 누워 보는데 옆으로 몇 바퀴 돌고 싶지만, 꾹 참는다.

 

오르막길이 열리는 길에서 되돌아왔다. 내리막길로 숲에 들어갔으니 오르막길로 나온다. 나는 모퉁이를 돌 적마다 아까 굴린 눈사람이 있는지 찾았다. ‘어, 눈사람이 애꾸눈이 되었네.’ 눈사람 눈알이 하나 떨어지고 입이 떨어졌다. 눈 하나와 코만 있어도 동그란 눈은 둥글다. 눈사람이 웃는다. 눈은 그저 한쪽 눈만 있어도 몸이 눈이니깐 눈이 없어도 우리 보고 웃는다. 입이 떨어지고 없지만, 눈이 입 같다.

 

뭉친 눈이 단단하고 열매는 물렁물렁했다. 눈과 입을 그려 줄 적에 쑥 들어가지 않았다. 꾹 누르면 눈사람이 부서질지 몰라 얄팍하게 살짝 찍었다. 한동안 눈사람과 살다 간 눈과 입이 되어 준 오리나무 열매가 애꾸눈이 되고 눈사람도 애꾸눈이 되고 말았다. ‘다음에는 좀 야물게 붙여 줄게. 섭섭해 하지 말아 주렴.’ 눈사람한테 마음으로 속삭이고서 돌아선다.

 

2023. 02. 12.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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