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3] 밑천
“작은딸 가는데 돈 좀 줘야 안 되겠어요?”
곁님은 내 말에 대꾸도 시원찮고 돈도 주지 않는다. 요즘 나는 돈을 만지지 않는다. 주면 쓰고, 없으면 안 쓴다. 카드로 쓰고 카드값 갚을 적에 돈을 옮긴다. 작은딸이 옮겨가는데 나는 엄마이고 엄마로서 주고 싶은 마음을 곁님은 모른다. 우리 엄마한테서 받아 보지는 못했지만, 마흔 살에 내가 새로 일자리를 얻었을 적에 처음 나가는 날 시어머니가 백만 원을 주면서 “옷 사입어라.” 하셨다. 얼마나 좋던지. 그렇게 돈을 쓸 줄 아는 시어머니를 닮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곁님은 돈을 안 주고, 내 주머니에 돈은 없고, 내가 따로 모은 돈을 찾아서 줄까 말까. 카드도 통장도 없는데 어떻게 돈을 찾을까. 생각 끝에 용상에 있는 손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간 김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쓴 책도 드리고 내 통장에서 언니 계좌나 아는 사람 계좌로 보내어 그 돈을 찾을 생각이다.
딸아이 짐을 치우면서도 ‘줄까 말까, 주면 얼마를 주지?’ 하는 생각이 바빴다. 차에 짐을 다 싣고 나니 마음이 조금 그랬다. 딸이 가져가는 짐이 보따리에 담아 싣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돈은 이럴 때 쓰는 거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딸한테 말을 꺼낼 때를 기다렸다.
저녁을 먹고 바깥마루에 둔 창살문하고 함지박을 밖으로 꺼내놓고 살짝 방에 앉았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작은딸은 ‘엄마 돈도 없으면서’ 하면서 안 받겠다고 한다. 그런데 돈이 안 간다. 보내는 계좌를 바꾸지 못해 딸을 보여주었다. 아, 내 통장에 든 밑천이 들통났네. 낱낱이 못 보게 빼앗았다. 다른 계좌에는 백만 원이 안 되네.
“야가 니 돈 주지 말라고 하는 갑다. 육십만 원이라도 보낼게. 계좌 불러 봐.”
작은딸 짝도 있는데 나는 작은딸이 불러준 계좌로 내 통장에 든 돈을 몽땅 보냈다. 그래도 ‘육십만 원이 뭐고, 처음 주려고 생각한 대로 백만 원은 줘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다른 계좌에서 사십만 원을 빼서 또 보냈다.
“내가 용상 가서 돈 찾아서 주려고 했는데, 마침 마을모임이라 하네. 이 돈을 모아 두려고 하지 말고 밑천으로 써. 봄이 오는데 둘이 옷도 사 입고 기분도 내고 첫 살림 밑천으로 장만하는데 보태.”
“엄마도 돈 없잖아.”
“엄마 큰 상도 받았잖아. 돈은 이럴 때 쓸려고 모으는 거야. 한 이백만 원 주고 싶었는데, 많이 못 줘서 그렇네.”
“고마워, 안 그래도 통장에 칠만 원밖에 없었는데, 잘 쓸게.”
우리는 아빠한테는 숨기기로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밑돈을 좀더 모아서, 나중에 뭘 보내야 할 일이 있을 적에 조금씩 더 보태서 채워야지. 인천에 가면 또 밑천을 줘야지. 생각은 저만큼 흘러갔다.
2023. .02. 1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