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61] 말랑감

2023.01.21 06:25:19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1] 말랑감

 

상주 푸른누리를 지난달에 다녀왔다. 상주 시내에서 한참 먼 멧골에 깊이 깃든 그곳은 숲집 같았다. 그날 그곳에서 얻어온 말랑감이 남았다. 빛깔이 곱고 말랑한 감을 먼저 골라 먹다 보니 까맣고 흉이 난 감만 남았다. 어찌할까 하다가 까치밥으로 삼기로 한다.

 

물을 큰 그릇에 옮긴 날 말랑감을 하나 놓았다. 아침에 문을 열어 빼꼼히 보니 쪼아먹은 구멍이 났다. 물을 더 붓고 감을 둘 또 놓았다. 까치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두리번거린다. “이 물을 누가 놓았지? 감은 어디서 떨어졌지?” 하는 듯했다.

 

까치는 물을 먹을 적에도 모이를 먹을 적에도 소리를 낸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면 조용히 몰래 먹어야 할 듯한데, 오히려 소리를 낸다. 요즘 내 귀에 이 소리가 말로 들린다. 살피는 몸짓이 말 같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그런데 어디 있어요?” 같은 소리가 들리면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가리개 곁에 숨어서 본다.

 

큰 까치가 오니 어린 까치가 날아갔다. 큰 까치는 넓은 물독에 들어갔다. 꼬리가 잠기지 않는다. 어느새 날아가고 어린 까치가 왔다. 물을 먹고는 감껍질을 한 입 물고 날아간다. 누굴 줄까. 저 어미 줄까. 두고 새참으로 먹을까. 날개로 무얼 잡지는 못하고 오로지 입이 손이 되는 새를 물끄러미 본다.

 

감은 감대로 새는 새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그릇에 담겨 찰랑거리는 물은 물대로 쌀 모이는 쌀대로 그릇은 그릇대로, 그곳에 숨이 들어가면서 나처럼 너처럼 하나같이 어우러진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크기하고 모습이 다를 뿐, 생각이 그곳에 들어가서 사는 다 다른 집 같다.

 

어둡다. 새는 어두우면 물을 먹으러 안 온다. 둥지로 돌아갔다. 물에도 그릇에도 감에도, 아까 새가 앉은 자리에도 어둠이 내려앉는다. 이제는 고요하고 깜깜하다.

 

날마다 어둠이 찾아오고 아침이 찾아오는 하루이다. 새가 찾아오고 사람이 찾아오는 우리 집이다. 비록 모습이 다르지만 거두고 싶은 마음이다. 물단지에 감알에 내어준 자리에 너랑 나랑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튿날 아침에 더 어린 까치가 물을 먹기 좋게 가득 채워야지. 쪼아먹다 남긴 감껍질을 버리고 다시 내놓아야지. 며칠은 까치밥이 넉넉할 듯하다.

 

 

 

2023. 01. 10.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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