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55] 흰김치

2022.12.07 20:04:42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5] 흰김치

 

시골에서 배추를 잔뜩 갖고 왔다. 요즘은 예전하고 달라서 이웃한테 좀 팔까 싶어도 팔리지 않는다. 싱싱할 적에 김치를 담그면 좋겠지만, 올해 나는 김치 안 한다. 엄마가 한 통 담아 놨고 묵은김치도 아직 있다. 곁님은 어디서 봤는지 물김치를 담그는 길을 적어 왔다.

 

바구니에 물김치에 들어갈 마늘이며 양파, 쪽파, 양배추, 생강, 배, 사과, 무, 배추를 담아 왔다. 믹서기가 가게에 있어 김치물에 넣을 것을 다시 담는다. 나는 시키는 대로 마늘과 생강 홍고추를 넣어 갈고, 미나리와 실파를 총총 썰어 놓았다.

 

가게서 소금물에 배추를 절여 물을 빼서 갖고 왔다. 가게 문을 거의 밤 12시에 닫는데, 졸음을 참고 기다렸다가 둘이서 담근다. 큰 그릇에 내가 갈아 놓은 양념을 붓고, 채설어 놓은 무와 대추를 넣어 버무리고, 배추이파리에 집어넣고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그리고 무를 통으로 썰어서 넣고 곁님이 마련해 온 양념물을 붓고 밖에 두었다.

 

아침에 한 포기 꺼내 주니 잘 먹는다. 국물이 좀 짜서 생무를 썰어 넣었다. 그리고 한 포기 담아 가게에 갖고 갔다. 우리 곁님은 짜면 먹지 않는 사람인데, 스스로 우려낸 국물이라 그런지 짜도 잘 먹는다. 아마 내가 하다가 이렇게 짜면 아마도, 먹었을까? 안 먹었겠지?

 

배추를 자르고 씻고 한나절을 꼬박 걸렸다. 배추 세 포기 담가 보니 아무것 없다고 하는 곁님은 이제 빨간김치를 담그겠다고 한다. 집에서는 김치 먹을 일이 적지만 두 끼를 가게서 밥을 먹어야 하니깐, 좋아서 담근 김치는 잘 먹지 싶다. 반찬거리가 많지만 내 일도 힘들고 집에 오면 무어라도 좀 본답시고 데면데면하다. 봐주는 일만 해도 어딜까.

 

곧 딸이 결혼하는데 사위가 오면 주고 싶은가. 보기보다 곁님은 집안일을 참 잘 한다. 아는 다른 사람들은 아내가 집안일 다 하다가 아파서 병원에 있으니 밥을 할 줄 모르고 빨래를 돌릴 줄 몰라 쩔쩔맨다. 집안일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적에는 좋았겠지만, 앞으로 그동안 안 해본 집안일을 배워서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에서는 누구든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쪽으로 본다면, 우리 집은 내가 없어도 굶지 않을 사람이다. 운동한 옷은 가게서 빨지, 밥해 먹지, 연장 잘 다루지. 아쉬울 일이 하나도 없다. 가게에 한 사람을 들이지 않은 뒤로 오히려 이 한 가지 일에서 벗어났다.

 

이제 눈칫밥을 덜 먹고, 나도 책을 읽을 짬을 낸다. 책을 두 판이나 엮고 나니 내 일손을 덜어준다. 한집안에서도 어떤 열매가 나오면 마주하는 일이 다르듯이 글판에 이름이 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셔 주려나. 이제 마음 놓고 책을 읽으면 나도 쑥쑥 들어온 만큼 글길을 틀지 모른다. 옷을 다 벗은 듯한 글을 냈으니, 이제는 한 겹 두 겹 새옷을 입는 글을 쓰면서 나아지는 길을 가고 싶다. 내 마음에 조그맣게 물결치는 일을 넘어서고, 둘레를 헤아리고 더 나아가는 글을 써서 메말라가는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고 싶다. 풀꽃나무 이야기부터 작은삶길에 이어, 앞으로 쓸 새빛을 그려 본다.

 

2022. 11. 26.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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