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53] 기차 탔네

2022.12.02 19:03:39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3] 기차 탔네

 

기차를 탔다. 1호차이다. 타고 내리기 쉬운 가운데쯤 맡으면 좋았을걸. 차표 끊는 일이 서툴어서, 알림창에 뜨는 대로 끊었더니, 처음과 끝이다. 서울길은 첫머리에 가까운 1호차이고, 대구길은 맨 끝이다. 쭉 뻗은 곧은 줄에 처음이고 끝이 따로 있을까, 뾰족한 기차 머리를 앞과 뒤에 마주 잇대어 이쪽저쪽 한 줄만 타는 기차이다.

 

같이 나온 곁님은 시골로 배추를 가지러 간다. 가는 길에 배웅을 받는다. 무척 바라던 일인데, 이런 날도 있네. 이른아침에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 타는곳에 일찍 나왔더니 한 대가 지나간다. 한쪽은 앞을 보는 자리이고, 한쪽은 뒤로 보는 자리이다. 기차도 자리처럼 맞물고 휙 지나간다.

 

하늘빛이 온통 뿌옇다.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숲은 가을이 깊다. 바깥 그림은 가만히 있는데 달리는 기차를 타니 누가 누구를 보는지 모르겠다. 살림집에서 작은 창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텐데, 여기서는 창문을 보지 못해도 가만히 있는 곳에서는 달리는 기차를 더 잘 볼 테지. 가까운 그림은 스치고 멀리 있는 집은 천천히 스친다. 더 멀리 있는 숲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다. 오래 산 숲은 다르네. 흙이 쉬어야 할 때 하얀 비닐로 뒤덮은 밭을 본다. 겨울에도 일하는 흙은 어떤 마음일까.

 

굴을 지난다. 귀를 찌르는 듯하다. 밝은 자리를 슥 지나면 어두운 굴에 또 들어서고, 끝없을 듯한 캄캄한 굴에서는 눈을 감는다. 이 어두운 굴처럼 어디론가 가고, 눈뜨면 굴 밖처럼 환하다가 안개 같은 굴을 지난다. 밝고 어두운 겨끔나기 삶을 말하고 싶은 기차일까. 스치며 지나온 일이 아쉽다고 말하하려나. 산을 뚫고 달리는 기차처럼 무엇이든 뚫고 가야 한다고 말하는지 모른다. 빨리 닿는 만큼 스치고 짓누르고, 어느 자리에 오르자면 그저 앞만 봐야 하는지 모르고. 어둠을 빠져나오면 하늘과 땅으로 다시 태어나는 삶과 죽음을 철길에 쓰는 셈인가.

 

늘 높은 길에서 달리며 훤히 둘러보는 기차는 빠르고 길다. 내 몸을 실어 옮겨주는 이 자리가 하늘로 가는 듯하다.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에 자꾸 데려다준다. 아침 연기가 하늘로 오르다가 길을 돌린다. 옆으로 흩어져도 바람을 타겠지. 마음대로 탔지만 달리는 건 기차 마음이네. 기차처럼 빨리 지나간 내 삶에 조각을 줍기도 앞서, 어디가 어제이고 오늘이고 모레인지 모르겠다. 이제 하얀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열린다. 이제 기차는 대전역을 지난다.

 

눈 좀 붙여야지 싶은데 기차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길이라고는 자갈길 쇳덩어리뿐, 가장 무거운 것들이 모여 달리는 길, 바퀴 소리를 견디며 끼리끼리 품는다. 쇠마디 가락인지, 우는 바람인지. 기차는 두 목숨을 걸고 달린다. 갈 적에는 첫 칸을 탔다가 돌아갈 적에는 마지막 칸, 해 뜨면 첫 칸이 되고, 한 칸 두 칸 이어진 고리, 기차와 나는 비껴가지 못하는 삶.

 

2022. 11. 22.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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