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31] 목소리

2022.09.24 19:11:19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1] 목소리

 

돌개바람이 지나간 다음날 엄마한테 전화했다.

 

“비 피해는 …….”

“그래, 괴안타. 아랫마을에 일하러 왔다. 뭐라 카노… 왜 그러노?”

“갑자기 말이 안 나와 …….”

“잠 안 자고 너무 공부해서 그렇다”

 

말이 나오지 않아서 더듬거리는데 엄마는 너무 애쓴다고 하네. 옆에 누가 있는 듯하다. 어쩐 일인지 다른 사람 들으라는 딸 자랑하는 말이네. 삼십 초 넘기지도 못하고 끊는다.

 

목에 가는 털이 서로 부딪치듯 작게 떨리며 간질간질했다. 나오지 않았다. 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살가죽을 당기지만 목에서 떨리며 소리를 막는다. 일어나 물을 마시지 않아서 더 그런가. 밤새 입을 꼭 다물고 자서 그런가. 일할 때는 말짱하다가 집에 와서 입을 다물어서 그런지 곁님이 전화하면 기침만 나고 말이 안 나온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이러다 목소리를 잃는가. 혼자서 ‘아아아아아’ 소리를 내지만 간질간질한 떨림이 사라질 때까지는 내지르지 못했다.

 

마침 집에 온 큰딸한테 말했더니, 큰딸이 유전자검사를 했단다.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받는데 발병률이 높은 암검사를 다섯 가지 해준대서 갑상선암을 받았다. 발병율이 99%라나. 어쩐다나. 가만 생각하니 우리 엄마가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내가 한때지만 목소리가 안 나오는 까닭이 갑상선 때문일까. 그렇다면 말을 자주 하고 목소리가 커서 걱정이고 내 목도 걱정이 된다.

 

갑상선은 나비를 닮았다는 글월을 봤다. 나비 눈 나비 발 나비 입처럼 목에 작은 구실이 있다고 나비 모습일까. 이 목소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목청이라고는 하지만 목으로 나오면 목소리가 되고 엉덩이로 나오면 방귀가 되겠지.

 

목소리에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이 마음은 또 어디서 있다가 목소리에 실려 나오는가. 어떤 소리는 노래가 되어 웃고 즐겁게 해주고 또 어떤 소리는 축축하게 젖은 울음이 되고 흐느끼는 대로 목소리가 달라붙어 듣는 사람과 내는 사람 마음이 무겁다. 사랑할 때 나오는 목소리, 새들 노래, 강아지나 고양이는 다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목소리에 입혀 나오는 말이 참인지 거짓말인지 감쪽같이 달라붙는다.

 

이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나왔다가 어디로 갈까. 내가 손가락으로 검은 자판을 두들겨도 소리가 나고 내 눈빛이 닿고 손이 닿고 발이 닿는 모든 것에 소리가 있다니. 숨결은 같이 느끼는구나. 살아서 숨쉬는 소리, 다 다른 소리, 소리는 사람이나 물건에 깃든 마음같다. 목구멍을 뚫고 혀를 가지고 놀고 입술을 가지고 노는 목소리가 내 몸을 입은 빛일까. 말짱할 적에는 느끼지 못하던 목소리가 막히니 소리 뿌리가 궁금하다. 때론 곱상하고 때론 거들먹거리고 가벼운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목소리, 늙지 않는 듯하다. 문득 내 입밖으로 나간 목소리를 어느 별나라에 차곡차곡 담아 두었다가 부르면 말빛을 타고 오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쇠소리가 나지 않도록 물을 자주 마시고 안팎이 부딪치지 않도록 살펴야겠다.

 

2022. 09. 08.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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