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 받은대로
갓 시집에 왔을 적에 큰시누네 딸이 열 살이었다. 조카인 셈인데, 나는 외숙모가 된다. 나를 가장 반겨준 사람이 조카 소정이가 아닌가 싶다. 편지를 꼬박 보내왔다. 외숙모를 참 좋아하는 아이처럼 느꼈다. 동생이 또 열 살이 되자 둘이 같이 편지를 보냈다. 집을 몇 군데 옮겨다니고, 우리 집 아이를 셋이나 낳아 키우면서 소꿉만 해도 많지만, 두 아이가 보낸 편지는 서른 해도 넘었지만, 버리지 못했다. 어린 날 마음은 고스란히 제 아이한테나 둘레 사람한테 마음결이 냇물처럼 핏줄을 타고 끝없이 흐르고 돈다.
시어머니 생신날을 횟집에서 한다. 큰시누네 식구만 열이 왔다. 삼대가 온 셈이다. 밥을 다 먹고 세 아이 소꿉잔치가 있었다. 할머니한테 편지를 읽어 준다. 그리고 오누이가 장구를 치고 가야금을 튕긴다. 서로 바꾸어 또 한 판 들려주고 가장 어린 여섯 살 난 아이는 춤을 춘다. 앞에는 소정이가 앉았고 눈짓을 하면서 치고 튕기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억지로 시키지도 않고 안 하겠다고 떼도 쓰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저 어릴 적에 하듯이 자랐다.
아이들이 읽고 건네준 편지를 펼쳤다. 열세 살 아이가 쓴 편지는 어른이 하는 말 같다. 반겨 주던 모습, 또래 아이한테 없는 두 분이 있어 뿌듯하다는 말을 썼다. 아이들이 쓰기에는 늙은 말씨 같은 ‘순간’ ‘세월’이란 말을 썼다. 아이가 키도 크지만 말품새를 보면 의젓하다. 제 말씨가 맞지만 읽으면 어른이 쓴 듯하다. 아이한테는 아이 냄새가 나는 말이면 더 풋풋할 테지. 보고 듣고 배우는 일이 고르고 그만큼 넓기도 할 테지.
이 아이들이 안 왔으면 잔칫자리가 밥만 먹고 헤어질 텐데, 아이들이 웃음을 지핀다. 세 아이 가운데 가장 어린아이는 무엇 때문에 골이 잔뜩 났는지 무릎을 세우고 고개 숙여 운다. 아무도 곁에 가지 않자 슬며시 고개를 들고 눈을 치켜들고 안 보는 척 보고 또 운다. 우리 아들 키울 적에는 이렇게 울면 시끄럽다고 윽박지르고 했는데, 가만히 두면 울기가 뭣한지 그치지도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우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참 아이들 답다.
큰시누네 두 딸이 어린 날에 외숙모인 나를 잘 따랐다. 어느덧 마흔이 넘은 두 아이가 내 손을 꼭 잡는다. 언니동생이 클 때도 편지를 쓰고 살갑게 굴더니, 제 아이도 밝고 살갑게 키운 모습을 보니 어린 날 우리가 자라온 살림에 따라 뼈에 스며들 만큼 마음씨가 온몸을 돌고 뼈대가 되어 주는가. 받은 대로 주는 일이 나쁜 일이 아니구나. 서로 울림이 있었기에 베푸는 길 같다.
2022.06.27.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