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 ] 다툼
우리 가게에서 나물을 손질하는데 누가 “사장님 되세요?” 묻는다. 우리 가게에 자주 오는 손님인데 둘 다 모자를 쓰고 입을 가려서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왜 그러세요?” 하고 물었다. “어제, 저녁 여섯 시 조금 넘어서, 여기에서 카드를 썼는데 화면을 좀 보여줄 수 있나요?” 하신다. “네, 그러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여덟 살 딸이 독서실에서 동무와 싸웠단다. 싸운 아이 마음을 풀어 주려고 마실거리를 사주었는데, 아이 엄마는 안 먹으려고 하는 아이한테 억지로 사주었다는 말을 하더란다. 조금 속도 상하고 그 아이가 억지로 받았는지 아니면 스스로 가지고 왔는지 보고 싶단다. “아이를 봐서라도 그 아이 엄마한테 보여줄 일은 아닌 듯해요. 언젠가는 참마음을 알 거예요” 하고 얘기했지만, 아이 엄마는 속으로 울컥하는 마음을 씻지 못하는 듯하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 엄마가 왜 싸우고 얻어먹느냐고 다그치면 아이는 꾸중 안 들으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여덟에서 열 살까지는 엄마 뒷받침으로 아이들이 위아래로 선다. 엄마들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는 시험성적에 따라서 말발이 서거나 없다. 요즘은 엄마는 똑똑해야 하고 아이도 똑똑해야 한다. 엄마는 물밑에서 서로 피튀기듯 다툰다.
창밖을 본다. 길 건너 학교 앞에 아침이며 때마다 아이들이 교문 앞에 엄마들이 서서 기다린다. 아이를 기다리면서 엄마들이 말을 나누고 눈인사하면서 발을 넓힌다. 다른 집 아이는 어떤지 엄마들은 궁금하다. 아이들이 커 가고 반이 바뀌어도, 또 아이 엄마끼리 자주 만나고 말을 섞다 보면, 어느새 아이 엄마끼리 동무가 된다. 아이가 대학교를 마친 뒤에도 서로 소식을 받고 사회 동무로 이어간다. 다만 대학 이름에 따라 말하기를 꺼리기도 하면서 슬그머니 끊기기도 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만나는 이웃집 아이가 엄마한테는 새로 동무를 만나는 실마리가 된다. 이 손님도 몇 해를 아이를 업고 가게에 왔다. 아이가 걸음마를 하면서 엄마 몸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업고 다닐 적이 오히려 어린 만큼 엄마 마음이 가벼웠지 싶다. 아이가 커 갈수록 엄마도 아이들이 겪는 일을 그대로 겪는다. 아이는 엄마 손길이 있어 마음이 아늑하고 엄마는 새롭게 아이들처럼 사람을 사귀느라 마음이 오간다. 잘 나가던 일터를 그만두고 아이들 키우는 숱한 엄마들은 다들 어떤 굴레에 갇히지만, 그래도 요즘 엄마들은 꽤 야무지다.
어제 아이들이 와서 마실거리를 산 모습을 찾아본다. 이 모습을 손전화로 찍어서 보낸다. 손님이 보여 달라고 한 일이지만, 잘한 일인지 헷갈린다. 싸움은 말리라고 하는데, 오히려 더 크게 벌이도록 부추긴 셈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밖에서 엄마를 자꾸 부른다.
2022. 06. 24.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