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삶 1] 긴 길

2022.06.08 09:12:22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 긴 길

 

사람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을 때가 있다. 막상 자리를 마련하면 낯선 내가 툭 튀어나온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말이 많다. 알맹이가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그러고서는 말을 너무 했다고 여긴다. 잔뜩 핏대를 올리다 보면 말이 풀어지고 사투리가 술술 나온다. 이럴 적에 곁님은 “쓸데없이 말이 많다”고 넌지시 나무란다. 그런데 곁님이 나더러 말이 쓸데없이 많다고 하면 왜 그리도 듣기 싫은지 몰라, 그저 입을 굳게 다문다. 이러다가 혼자 차를 몰 때에는 따로 말할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차분하고 고요하다. 어떤 모습이 나일까.

 

그렇지만 차분하고 고요히 혼자 차를 몰기도 오래가지 않는다. 또 수다를 떨고 싶다. 대구 시내에서 사니, 머리 위로는 지상열차가 달리고 둘레는 차가 가득하다. 버스로 세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이어도 참으로 길다. 어떤 날은 이 짧은 길을 가슴이 두근거리며 달리다가, 어느 하루는 길디길어 티끌 같은 마음인 채 달린다. 그리 길지 않은 이동안에라도말을 아껴야지 싶은데, 생각보다 어렵다. 내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어 주던 언니가 전주에 갔다. 하루를 못 보는데 또 허전해서 수다를 받아줄 다른 목소리를 찾는다.

 

세 자매가 벗님이 연 잔치에 갔단다. 동생은 자동차를 몰고 언니는 동무로 늘 그림자처럼 다니는 듯 보였다. 가장 든든한 글벗 같아 부럽다. 나는 언니도 없고 여동생도 없다. 잔치를 벌이는 글마당도 없다. 여러 마음이 엇갈리니, 이런저런 사람하고 섞이거나 만나기보다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그 한 사람한테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나는 더 많은 사람하고 떠들기보다는, 마음이 맞는 한 사람 목소리로 내 텅 빈 속을 가득 채우고 싶다.

 

큰 상을 받고 글밭에서 발을 넓히는 글벗이 있다. 난 이 글벗과 달리 나는 아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다. 혼자 글길을 가기에는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른다. 옆에 나란히 걸어가는 글벗을 본다면 길을 놓지 않고 무리에 휩쓸려 가더라고 ‘나를 알아보아 주고 말을 거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그래서 시인모임에 들어가 볼까 싶어 한 곳을 살펴 글월을 보내어 본다. 내가 쓴 시를 함께 읽어 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사람을 많이 사귀기보다 내 마음이 자라도록 이끌어 줄 사람을 둘레에 두고 싶다. 시를 쓰는 무리에 들어간다는 마음이랄까. 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으로 또 다른 사람을 알아가면 저절로 글판에 뛰어든 사람을 조금씩 만나겠지. 그리고 나도 내 이름을 새긴 시집을 내고 싶다. 둘레에서 하는 말을 들으면, 갈수록 시집이 너무 들어와서 쌓인다고 하던데, 나도 아는 사람이 많아 그렇게 집안에 잔뜩 쌓이도록 책을 받아 보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시집을 낸다고 할 적에 글도 살피고 겉그림도 함께 걱정해 줄 글벗이 있으면 좋겠다.

 

사람을 알아가는 기쁨을 바란다. 내가 턱없이 모자라 누구는 나를 깎거나 얕볼 수 있다. 시인모임에 들어가도 얻을 게 없거나 오히려 사람한테 치이거나 더 휘둘릴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한 걸음을 내딛고서 스스로 새길을 찾아보자고 생각한다.

 

2022. 05. 31.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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