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하루 발걸음 29] 칼

2022.04.25 21:12:23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9] 칼

 

가마솥 옆에는 언제나 숫돌이 있었다. 굽이 높은 구두처럼 비스듬한 걸이에 푸름하고 네모난 돌을 얹어 놓았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하고 다르게 매끈하고 보드랍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가 앉아서 낫을 간다. 쇠바가지에 물을 담아 칼날에 묻히고 손잡이를 잡고 한 손은 낫 앞머리를 잡고 갈다가 들고 보고 또 간다. 어머니가 쓰는 부엌칼은 무겁고 두껍다. 부엌칼도 숫돌에 간다. 어떤 날은 할아버지가 아버지 낫을 갈고 도끼도 간다. 자다가 일어나 아버지가 칼을 가는 모습을 보면 무서웠다. 칼 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데도 무섭기만 했다. 아버지는 밭에 가기 앞서 숫돌에 칼을 갈았다. 연필이 있어야 글씨를 쓰듯이 아버지한테는 낫이 있어야 밭둑을 손질하고 소가 먹을 풀을 벤다. 낫이 있어야 깨도 찌고 나무도 해서 불을 지핀다. 낫은 일을 많이 해서 칼날이 무디다. 고운 숫돌이 어떻게 칼날을 세울까. 아버지가 숫돌 앞에 느긋이 앉아 오래도록 낫을 갈던 얼굴은 늘 웃음이 머문다. 낫을 이리저리 기울여 보고 갈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날카로워서 낫 끝에 닿으면 사뿐히 자르는 칼날은 풀꽃나무를 자르는 끔찍한 일인데 고운 숫돌에 비비며 뉘우치듯 자취를 닦을까. 하기 싫어도 아버지를 도와 뭇목숨을 다루고 숫돌에 닳아 칼날이 묻은 물은 눈물일까. 돌에서 태어나 숫돌 품에 있으면 칼은 힘이 솟을까. 낫은 우리 아버지 손이 되어 집안을 일으키고 칼은 어머니 손이 되어 밥살림을 도왔네.

 

2022. 04. 25.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Copyright @배달겨레소리 Corp. All rights reserved.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5길 189-8 등록번호: 경북, 아00595 | 펴낸날 : 2020.6.8 | 펴낸이 : 최석진 | 엮는이 : 박연옥 | 전화번호 : 010-3174-9820 Copyright @배달겨레소리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