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하루 발걸음 20] 키

2022.03.30 13:07:23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0] 키

 

우리가 자는 곳에는 벽장이 있었다. 냉장고가 없던 때라 벽장에 넣어 두면 시원했다. 작은 문에 달린 줄을 당기며 연다. 키가 작은 우리는 깨금발을 디뎌도 턱에도 미치지 못했다. 폴짝 뛰면서 안에 뭐가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동생 엉덩이를 안고 안을 보게 했다. 그때부터 동생과 나는 벽장 밑에 서서 밤마다 키를 쟀다. 머리에 연필을 올려놓고 눈금을 그렸다. 동생은 벽장 밑에 긋고 나는 문설주 옆에 눈금을 그렸다. 몸을 벽에 딱 붙이고 턱을 당긴다. 처음에는 뒤꿈치를 바짝 당기는데 빨리 크고 싶어서 뒤꿈치를 몰래 들었다. 배에 힘을 꽉 주고 어떻게 하든 키를 늘리려고 애썼다.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재면 더 자랐다. 어머니가 보면 벽종이 더럽힌다고 꾸지람을 해서 눈에 안 띄게 금을 그었다. 눈금이 올라가면 신나서 밥을 더 먹었다. 누워 잠자는 동안 몸을 쭉 펴고 자서 그럴까. 구부러진 몸과 눌린 뼈마디가 제자리로 돌아가서 그렇겠지. 어린 날 우유라도 좀 먹었더라면 내 키가 더 자랐으려나. 마을에 사는 집안 어른이 그러던데, 우리 할아버지도 키가 크고 집안이 다 크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일을 너무해서 작을는지 모른다. 키가 자라 어른이 되면 뭐가 그리 좋다고 키가 자라기만 기다렸을까.

 

2022. 03. 26.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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