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12] 고드름
겨울이면 고드름을 먹었다. 눈이 녹으면서 골이 진 지붕 끝에 뾰족하게 자랐다. 처마까지 팔이 닿지 않아 가마솥이 걸린 뜨락에 올라가 고드름을 땄다. 하나씩 따서 칼싸움을 하고, 또 따서 사탕처럼 물을 빨아 먹었다. 단맛이 아니어도 얼음과자처럼 빨고 우지직 씹어 먹었다. 시린 손을 호호 불며 할아버지 방 아랫목에 손을 넣고 녹이고 할아버지 화로에 손을 쬐며 녹였다. 처마에 달린 고드름이 녹고 지붕에 눈이 녹아 처마 밑에 똑똑 한 방울씩 떨어지면 땅이 파이고 흙이 질퍽하다. 개울이 얼면 얼음이 뿌옇던데, 처마 밑에 달려 얼어붙은 굵은 고드름은 하얗지만 작은 고드름은 속까지 맑다. 눈은 따뜻한 우리 손에 닿으면 뭉쳐 주고 지붕에서 처마로 똑똑 떨어지면 몸을 바꾸네. 물은 다시 쌓여 울퉁불퉁 뻗으며 고드름도 자라네. 어린 날에는 눈도 많이 내리고 처마마다 고드름도 듬뿍 자랐다. 이제 바람 기운이 달라지고 집은 네모난 벽돌집으로 바뀌니 고드름이 자랄 틈이 없네. 고드름은 이제 누구랑 놀고 누가 먹어 줄까.
2022. 03. 09.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