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9] 볏단(요구르트 전화)
열두세 살 적에 우리 마을에 전화가 한 대가 들어왔다. 열아홉 살이 되어도 이장 집에 한 대뿐이라 마을사람이 함께 썼다. 교환원을 거쳐 전화가 오면 이장이 누구누구 전화 받으라는 방송한다. 우리는 티브이에 나오는 전화를 보고 작은오빠와 놀이를 했다. 가을에 바심하고 소죽을 끓이려고 쌓아 둔 짚단 구덩이를 두 군데 팠다. 요구르트 빈 통을 성냥불로 구멍을 내고 밑에서 안으로 구멍에 끼워 성냥을 부러트려 묶었다. 실을 어림잡아 길게 풀고 요구르트 통에 두 실을 묶었다. 오빠는 높은 구덩이에, 나는 낮은 구덩이에 들어갔다. 실을 팽팽하게 당겼다. 요구르트 통에 입을 꼭 붙이고 말이 새지 않게 했다. 오빠가 저쪽에서 ‘들리나’ 소리치면 나는 이쪽에서 ‘잘 들려’ 대꾸했다. 말소리가 실을 타고 들리는 듯했다. 나는 쌀을 꼭꼭 씹어 뱉어서 동그랗게 빚은 쌀알을 그릇에 담아 전화놀이를 하면서도 오빠한테 빼앗기지 않으려고 구덩이에서 숨겨 놓고 먹었다. 요구르트 통을 귀에 대지 않아도 우리가 말하는 소리는 그대로 들리는데도 우리는 실을 타고 소리가 오는 줄 알았다. 겨울인데도 우리 집 마당은 다른 집보다 볕이 잘 들어 따뜻했다. 털옷에 볏짚 부스러기가 묻어도 짚단은 속이 따뜻하고 아늑했다. 숨바꼭질을 할 적에도 들어가 숨기도 했다. 눈이 쌓이는 날에는 쌓아 놓은 눈에 굴을 뚫어 실을 당기며 전화놀이를 했다.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놀았다. 나는 짚냄새가 그리 싫지 않았다. 짚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전화를 들 적마다 귀에 들리는 듯하다.
2022. 03. 09.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