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울산고을 우리말 땅이름 살펴보기
3. 한실거랑으로 흘러드는 물줄기와 그 물길이 지나는 마을들(2)
새김돌에서 물은 조금 더 흘러 아름다운 방구대(반구대)를 지나 다시 새녘으로 꺾이는데, 그 어름에서 또 한줄기 새 물을 만난다.
바로 고헌메 새마녘(남동쪽)으로 흘러내린 물이 고래섬, 갈밭, 새말, 괴말, 솔배기, 새터(모두 다개와 반곡에 딸린 마을)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이 그대로 살아있는 마을을 지나 흘러온 물이다.
바로 이 두 물이 만나 흐르는 오른쪽 바위 벼랑에 고래그림, 고래잡는 그림, 범그림, 사람그림, 사슴그림,,, 온갖 그림이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아니 가까운 마을 사람이나 그 고장사람은 옛부터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부터 쉰 해쯤 앞에야 이것을 알아내고 보니, 여태까지 알아낸 가장 오래된 그림이라고 한다. 하기는 조금 위쪽에 있는 새김돌(각석)이 더 오랜 것이고 (새김돌엔 아득한 옛날에 새긴 세모꼴, 동그라미 같이 그림이라고 하기 앞 것과 세나라 때에 새긴 것이 아울러 있음), 이 바위그림(암각화)이 그 다음 것이라고 한다.
이 바위그림이 있는 곳부터 한실로 들어가는데, 바위그림 바로 아래가 한실마을 건너각단이고 한참 내려가서 거랑 건너는 서당마실이고, 서당마실앞으로 흐르는 시내는 소암골에서 흘러내린 물인데 이 물과 절골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나는 그 어름과 마녘 건너편에 큰 마실이 있었다. 큰 마실에는 배곳(학교)도 있었다고 하니 한실마을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지동마실은 절골과 큰 마실 사이에 조금 위쪽에 있던 마실이다.
한실이란 말은 큰 골짜기, 큰 골이란 뜻이다. 물이 골짜기를 흐르다 탁 트이며 너른 들을 이룰 때 한실이란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엔 한실이란 마을이름이 곳곳에 널려 있어 다 세면 쉰(오십)이 훨씬 넘는다.
‘실’은 골짜기, 골이란 뜻인데, 한자로 ‘곡’이라 적었다. 그래서 한실은 대곡으로, 밤실은 율곡으로....
‘밤실’은 밤이 많이 나는 골짜기, 곧 ‘밤골’, ‘밤고을’이란 뜻이다. 우리가 다 잘 아는 이율곡님도 자란 마을 이름이 밤실인데 굳이 덧이름(호)을 한자로 율곡이라 한 것이다. 이 때는 우리글을 만든 뒤인데도 밤실(율곡)같은 선비조차 한자에 사로잡혀 너나없이 이렇게 해왔으니, 그 버릇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배운 사람들은 아직도 한자말을 못 버리고 부둥켜안고 산다.
우리글이 없었을 때는 한자를 빌어 적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버젓이 우리글이 있는 데도 배운이들이 앞을 내다보지 못해 백성이 쓰는 말과 다르게 한자말을 입말로도 써가면서 우리말을 멀리하는 바람에 한자말이 차츰 입말로도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다가 끝내 왜놈 종살이로 까지 굴러 떨어지면서 모든 마을이름, 들이름, 내이름, 메이름, 가람이름, 길이름을 죄다 한자말로 바꾸어 오늘날까지 그대로 쓴다. 온열해(백십년)가 넘었는데도 임자인 백성이 뽑아 나랏일을 맡겨 줬는데도 뽑힌이든 나랏일꾼이든 가르침이(교수, 교사)든 한자말에 물들고 눈멀어 마땅히 우리말로 되찾아야 할 일을 되찾으려 꿈도 꾸지 못하고 나몰라라 한다.
‘실’이 들어가는 마을 이름은 이밖에도 모래실, 땅꼴이 낟(곡식)을 까부릴 때 쓰는 키(서라벌말 ‘체이’, 문경말 ‘치’) 같이 생겼다 해서 치실(문경 봉암절 아래 마을 모래실 맞은편 정토 수련원이 있는 곳 땅이름) 같은 이름도 있다.
한실거랑(한실내, 대곡천)은 이렇게 한실들을 적시고 내려가다, 다시 틀못산(태기), 옹티에서 흘러내린 물을 받아들이고 아래로 흘러가는데, 이곳에 예순해쯤 앞에 사연댐이라는 물막이를 해서 아름다운 한실이 죄다 물에 잠겼다. 그러다가 바로 건너각단 옆 바위그림이 보배롭다고 알려지면서 이 바위그림이 물에 잠기느냐, 마느냐를 놓고 온나라가 떠들썩하게 옥신각신하다가 요즘은 이 바위그림이 물에 안 잠기면서 옛 한실마을은 그런대로 온통 물바다가 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