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울산고을 우리말 땅이름 살펴보기
3. 한실거랑으로 흘러드는 물줄기와 그 물길이 지나는 마을들(1)
어릴 때 동네 어른들한테서 ‘밝메(백운메) 세가람오름(삼강봉)에 떨어지는 비는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때로는 쇠동골(소호) 쪽으로 떨어져 가라가람(낙동강)으로 가고 어떨 때는 안에(내와), 바데(외와) 쪽으로 떨어져 형산가람으로 가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탑골 쪽으로 떨어지면 테화가람으로 내리 흐른다’는 우스개소리같은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세 가람으로 갈라지는 꼭지점이 바로 세가람오름이다.
이 밝메에서 흘러내린 물이 탑골을 지나면 아름다운 가메들 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 마넉골(미호)내를 이루어 마넉골 벌을 적시고 흘러가서 만나는 첫 마실이 버던(유촌)이다. 우리가 어릴 적 어머니한테 듣던 ‘버던 김서방네 잔치한단다’처럼 들었던 버던이란 아름다운 우리말은 사라지고 모두 유촌이라 일컫는다. 하기는 마넉골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미호라고 일본사람들이 와서 지었을 것 같은 한자말 이름을 쓴다.
아랫마넉골(하동)까지 새녘(동쪽)으로 흘러오던 물줄기가 마녘(남쪽)으로 조금씩 굽어지다가 버던에서부터는 마녘으로 오롯이 굽어 흐르면서 삼정골에 가까와지면 먼저 아미메 자락 돈골(전읍)에서 흘러내린 물을 받아 안고, 조금 더 내려가면 새녘 멀리 지실령(치술령)에서 흘러내린 물과 국수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두물머리(양수징이)에서 만나 노루목을 굽어 돌아 흘러온 물과 웃삼정골에서 만난다. 조금 아래에는 다시 아미메 수정내에서 섶밭골을 지나 내려오는 물과 다시 만나니, 이리 봐도 세 물, 저리 봐도 세 물이 만나는 곳이 삼정골이다. 이 삼정골이 본디 세물머리가 아니었나 싶다.
니혼사람들이 우리말 소리를 듣고 한자로 만들어낸 마을 이름이 어설프기 짝이 없고 엉터리가 많아 이 한자말 마을 이름들을 참말로 버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물은 아랫 삼정골, 고지핑이, 잠방골을 지나 빼어난 백년 골짜기를 굽이 돌아 장치이(장천)에 이르는데 오늘날은 이곳에 한실큰못(대곡댐)을 막아놓아, 못둑이 하늘 높이 솟아있다. 그래서 삼정골 아래쪽은 마을과 들과 골짜기가 모두 물에 잠겨 그야말로 물바다가 되었다. 못둑 아랫녘엔 큰 요양원이 들어서 있다.
이 거랑물은 장치이 한실큰못둑 아래에서 다시 새 물을 만나는데, 새 물 한줄기는 밝메에서 흘러내려 웃신필, 아랫신필, 너부(인보), 하늬내(서하), 구셋골(또는 구석골)을 지나온 물이고 또 한줄기는 고헌메에서 흘러내려 웃찻골(차리), 아랫찻골, 남중이, 신대이, 못앞을 지나온 물인데, 두 물이 장치이 바로 위에서 미리 만나 하나 되어 흘러내려 큰 거랑물과 만난다.
장치이에서 새녘으로 다시 꺾여 흐르다가 새김돌(천전각석) 어름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여 마녘으로 흐르는데, 새김돌 맞은 쪽 높은 바위벼랑 아랫녘이 큰미르(공룡) 발자국을 여럿 찾은 곳이다. 새김돌과 큰미르 발자국이 있는 이곳은 아이들이 놀기에 하늘나라, 꿈나라 같은 곳이다. 여기엔 여름 쉴 때(방학)에 자주 왔는데 어(외)할매집 두 살 아래 아우랑 물에 뛰어들어 마냥 놀았다.
물길이 마녘으로 꺾이는 어름에 작은 쏟물(폭포)이 있고 그 아래는 크고 작은 웅덩이가 있어 물고기가 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우리는 쪽대(대 막대를 두 손에 쥐고 고기 잡는 작은 그물)로 쇠치내, 은어, 버들피리, 징구멩이(민물새우), 모래무지, 지름쟁이(밝은 모래빛 바탕에 검은 점박이 미꾸라지)같은 맛 좋은 물고기가 널려 있는 곳에서 해 가는 줄 모르고 고기 잡고 멱 감았다, 재수가 좋으면 자라나 궁자(뱀장어)도 잡는 때도 있었다.
오랜만에 올여름 이 꿈같은 옛 놀이터를 그리며 이곳을 찾았는데 손도 못 담글 만큼 더러워진 물에다가 곳곳을 막아놓고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는 이름난 곳이 되어있어 옛꿈이 무너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