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9] 사과

2022.01.08 20:11:31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9] 사과

 

사과가 먹고 싶어서 산수유씨를 빼러 다녔다. 순이네 집은 산수유를 까면 새참으로 인도인지 국광인지 푸릇한 사과를 준다. 국광은 껍질이 푸르고 단단한데 달았다. 노랗게 익은 사과는 허벅허벅하고 부드럽다. 나는 부사나 홍옥보다 새참으로 나온 사과가 맛있었다. 낮에는 순이네 사과창고 벽에 등을 기대 나란히 서서 햇볕을 쬤다. 사과창고 문을 닫아도 향긋한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문을 활짝 열 적에는 쇠그물에 달라붙어 안을 들여다보면서 군침을 흘렸다. 창고는 캄캄하고 바닥이 깊었다. 나무상자를 겹겹이 쌓아 두고 바닥에 물도 고였다. 나는 산수유 까기 싫은데도 사과 먹으려고 참고 깠다. 아버지는 내가 사과 먹고 싶어서 산수유를 까는 줄 알았다. 몇 해 뒤에 우리 집에도 사과나무를 심었다. 아버지는 사과만 보면 딸 생각이 난다고 했다. 아버지는 사과나무를 심어 처음 열린 사과를 따서 우리를 주었다. 구미 사돈네가 생기기 앞서까지는 내가 사과를 마수걸이했다. 여름에 나오는 아오리나 홍옥을 먹고 나면 가을에 부사가 나왔다. 흉이 난 부사를 먼저 먹으면서 골마루에 두고 겨울이 끝나고 봄 여름까지도 먹었으니 한 해 내내 사과가 떨어지지 않은 셈이다. 흉이 나서 썪기도 했지만, 다 먹지 못해 버리기도 했다. 사과만 보면 내가 눈에 밟히던 아버지처럼 나도 사과만 보면 ‘딸 생각난다’ 하시던 아버지 목소리가 살갑게 들린다. 아버지가 돌아간 별에도 사과가 있을까.

 

 

2022. 01. 06.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Copyright @배달겨레소리 Corp. All rights reserved.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5길 189-8 등록번호: 경북, 아00595 | 펴낸날 : 2020.6.8 | 펴낸이 : 최석진 | 엮는이 : 박연옥 | 전화번호 : 010-3174-9820 Copyright @배달겨레소리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