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우리말살이는 겨레와 나라를 바로 세우는 바탕이다
3. 우리말을 어떻게 살려 쓰나
죽어가는 우리말을 살려내려면 첫째로 우리말을 밀어내고 자리잡은 한자말을 하나씩 하나씩 말글살이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이를테면 ‘감사하다’를 쓰지 말고 ‘고맙다’라고 말하고 ‘준비하다’는 ‘마련하다’, ‘장만하다’로, ‘비교하다’는 ‘견주다’로, ‘계속하다’는 ‘이어하다’로, ‘시작하다’는 ‘비롯하다’, ‘열다’로, ‘최고로’, ‘제일’은 ‘가장’이나 ‘으뜸’으로, ‘주방’은 ‘부엌’으로, ‘고객’은 ‘손님’으로, ‘전후’는 ‘앞뒤’로, ‘상하’는 ‘위아래’로, ‘좌우’는 ‘왼오른’으로 바꿔씁니다.
그러므로 ‘후문’은 마땅히 ‘뒷문’이라 써야겠고 ‘오전’, ‘오후’는 ‘앞낮’, ‘뒷낮’으로 쓰면 좋은데 좀 어설픈 것 같지요. 듣기에 그런데 ‘앞낮’, ‘뒷낮’이라고 조금만 써가면 귀에 익고 입에 익어가요. 요즘 ‘왼, 오른’을 잘 모르거나 어렴풋해서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워낙 ‘좌우’를 많이 써 그렇겠지요.
‘사용하다’, ‘이용하다’는 ‘쓰다’로, ‘사망하다’는 ‘돌아가다’나 ‘죽다’로, ‘서거하다’는 ‘돌아가시다’로, ‘수고하다’는 ‘애쓰다’로 바로 잡습니다.
‘매일’, ‘매월’, ‘매년’은 ‘날마다’ 또는 ‘나날이’, ‘달마다’, ‘다달이’, ‘해마다’로 씁니다.
일본사람이 쓰는 말 조찬, 오찬, 만찬은 우리말 아침밥, 낮밥, 저녁밥으로 바꿔 씁니다.
우리말을 더럽히는 으뜸가는 말로 저는 두 가지를 꼽는데요,
첫째는 ‘안녕’이란 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안녕’이란 말이 우리말살이에 뛰어 들어와 안방 차지하고 누구든지 말끝마다 ‘안녕’이라 하면서 멋진 우리말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버렸어요.
옛날엔, ‘살펴 가세요’ 라고 하던 것을 요즘은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하고,
‘잘 주무셔요’는 ‘안녕히 주무셔요’로.
헤어질 때, 잘 가, 잘 있어? 는 안녕!
만났을 때, 잘 지냈어? 어떻게 지내? 는 안녕?, 안녕하셔요?
물꼬 돌보고 오셔요?..... 안녕하세요?
아침 드셨어요?..... 안녕하셨어요?
김매고 옵니까?..... 안녕하셔요?
밭에 갔다 오시나요?..... 안녕하세요?
이처럼 ‘안녕’은 아기자기한 우리말 ‘잘’, ‘살펴’, ‘잘 가’, ‘잘 있어’, ‘물꼬 돌봄’, ‘아침밥’, ‘김매기’ 같은 말들을 쓰지 않아도 되고 그 사람을 꼼꼼히 살필 일도 없이, 곧 마음은 빠진 채로 입만 달싹여도 되는 빈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안녕’을 몰아내야 하는 까닭입니다.
둘째로, ‘갔었다’, ‘왔었다’, ‘하였었다’에서 ‘었’이 우리말을 어지럽힙니다.
이건 우리말이 아녜요. 잉글말투(영문법)에 나오는 지난적 끝남(과거완료)을 일본사람들이 저네들 말투로 받아들였고 이 일본말투를 흉내 내어 우리 말투에까지 끌어들인 말이 ‘왔었다’, ‘갔었다’에 쓰는 ‘었’입니다.
우리말은 아무리 오랜 지난일을 지난적(과거)에 말했을 때라도 모두 ‘갔다’, ‘왔다’ 하면 됩니다.
배운 사람들일수록 ‘했었다’, ‘갔었다’를 많이 쓰는데 듣기에 참으로 거북합니다. 우리 모두 얼을 차려 이 말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요즘 날이 갈수록 잉글말(영어)을 나날말에 끌어들여 쓰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아이들한테까지 어릴 때부터 잉글말(영어)를 가르치고 잉글말(영어) 노래를 틀어주는 얼빠진 어버이들도 늘어납니다. 옛날에 한자말 섞어 쓰려 애쓰던 마음이 이제 꼬부랑말 섞어 쓰는 흐름으로 바뀐 거지요.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말은 모두 우리말로 바꿔 씀으로써 서로 사이에 주고받는 말이 쉬워지고, 말이 쉬워질수록 마음을 서로 주고받기 쉬워 마음은 저절로 열립니다.
어려운 왜말 ‘소통’을 아무리 외쳐도 사람 사이에 열린 마음으로 뜻을 서로 주고받기가 쉽지 않은 것은 바로 나날말살이가 왜말로 된 까닭도 큰 말미(원인) 가운데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