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 대사전』(의) 올림말 살펴보기

2021.09.24 09:25:19

[글쓴이 김정섭님 ] 

  한글 새소식 498, 499에 실린 김정섭님 글을 글쓴이가 배달겨레소리에 실어도 좋다고 하셔서 옮겨 싣습니다. (한자말은 되도록 (  ) 안에 넣고 우리말로 다듬었습니다. --- 다듬은 이:  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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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 대사전』(의) 올림말 살펴보기

 

김 정 섭

1. 들머리

 

  우리말 말집(사전)이 하는 구실은 말글살이를 바르고 아름답게 하도록 알려주고 보여주고 이끌어주는 일일 것이다. 곧, 우리말 말집(사전)은 우리 말글살이(의) 본보기이자 잣대이다. 그런데 그 동안 몇몇 사람이나 모임에서 만든 ‘사전’은 접어두고, 나라(정부)에서 목대를 잡아 1991해(년)(국어연구원)에 펴낸 『표준 국어 대사전』은 참(정)말 이런 구실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 말집(사전)은 만든다고 할 때부터 말이 많았고 펴내자마자 뭇사람들 입길에 숱하게 오르내렸다. 올림말(표제어), 대중말(표준말), 맞춤법, 사이시옷, 띄어쓰기, 뜻풀이, 쓰임새 따위 곳곳에 잘못이 수두룩하다고 떠드는 소리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잘못된 곳이 몇 즈믄(천) 군데나 드러나자 국어(연구)원에서 고침표(정오표)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 또한 허술하고 잘못(의) 뿌리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라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로부터 열해가(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 말집(사전)이 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따라서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이번에 다시 한 번 샅샅이 살펴보고 잘못을 찾아내어 앞으로 펼쳐나갈 우리말의 올바른 길을 닦는데 쓸 디딤돌을 마련하고자 2011해(년)부터 2013해(년)까지 3해(년) 동안 ‘표준 사전’ 일곱 즈믄(칠천) 쪽, 쉰한골(오십일만) 낱말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많은 잘못을 찾아내었는데 그 가운데 여기서는 먼저, 말집(사전의) 바탕인 ‘올림말’만 따져보기로 한다.

 

2. 『표준 국어 대사전』의 올림말 살펴보기

 

  표준 사전의 올림말을 갈래지어 보면 크게 겨레말(배달말)과 한자말 그리고 하늬(서양)말, 세 갈래로 나뉜다. 여기서 반드시 따져보아야 할 일은 올림말이 모두‘우리말이냐’하는 것이다. 한자말(한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잉글말(영어), 일본말 따위 스물아홉 나라(『표준 국어 대사전』에 따름) 말을 참(정)말 우리말이라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을 풀어내려면 우리말(의) 뜻매김부터 해야 한다. 어떤 말이 우리말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잘라 말해서 우리말이란 ‘겨레말과 들온말(외래어)’을 아울러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들온말’은 배달말과 한 가지로 틀림없는 우리말이다. 그렇다면 올림말은 모두 겨레말이거나 들온말이라야 한다.

  그런데 올림말을 보면, 겨레말은 한글로, 한자말은‘학교(學校), 매도증서(賣渡證書)’처럼 한문글자를, 하늬(서양)말은 ‘라디오(radio), 로마자(Roma字)’처럼 로마글자를 묶음표 속에 함께 쓰고 있다. 말밑(어원)을 밝혔다고 하는데 그것은 풀이에서 할 일이고, 들온말로 받아들였다면 한문글자나 로마글자를 함께 쓸 수 없다. 본디나라 글자를 함께 올리면 들온말이 아니라 본디 나라말(딴 나라말)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김치, 막걸리, 시조(時調)’, 일본말 ‘진생, 미소, 낫도’ 따위가 올림말로 실렸지만 ‘한글, 한문글자, 가나 글자’를 함께 쓰지 않았다. 그 까닭은 이들 말은 들온말로 받아들인 잉글말(영어)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표준 국어 대사전』은 우리말 말집(사전)이라 하기는 어렵다. 우리말 말집(사전)이라면 올림말에 다른 나라 글자가 덧붙을 수 없다. 더욱이 한자말이 열에 일곱을 차지한다. 이래서는 우리말이 임자(주인) 자리에 앉을 수도 없을뿐더러 남(의) 말에 밀려서 말 구실을 하기도 어렵다. 우리 생각과 느낌을 가장 똑똑히 나타내고 그릴 수 있는 것은 우리말뿐이니까. 그런데도 일흔 해 가까이 ‘한글만 쓰느냐, 한문글자도 쓰느냐’하는 글자 싸움에 매달려 정작 우리말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말이 나라말 자리를 차고앉아서 올바른 말살이(언어생활)를 이끌며 글자살이(문자생활)도 바르게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한글학회『큰사전』(1957년)에는 올림말 164,125 낱말이 실렸는데 (순)우리말이 온에 45.46(퍼센트), 한자말이 온에 52.11(퍼센트) 바깥말이(외래어가) 온에 2.43(퍼센트)이다. 그런데, 국어(연구)원『표준 국어 대사전』(1999년)에 실린 쉰한골(51만) 올림말에는 (순)우리말이 온에 25.9(퍼센트), 한자말이 온에 58.1(퍼센트), 섞인 말이 온에 10.6(퍼센트), 하늬(서양)말이 온에 5.4(퍼센)이다. 섞인 말까지 치면 한자말은 온에 68.7(퍼센트)로 늘어난다. 곧, 올림말 열 가운데 겨레말은 셋이고 한자말은 일곱이다. 이러니 몇몇 든 사람, 난사람들은 이를 빌미로 (순)우리말은 쓰고 싶어도 없어서 못 쓴다느니, 한자말을 버리면 말글살이를 할 수 없다느니 하면서 첫배곳(초등학교)에서 한문글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떠든다. 장사치들은 온갖 거짓말로 한문글자를 배우라고 부추긴다. 겨레말이 졸아든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한자말만 떠받든다. 사람(의) 삶이, 동안(시간)이 흐르면서 가지를 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를 퍼뜨려서 더 넓어지고 더 높아지고 더 깊어지면 그렇게 된 만큼 낱말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새 몬(물건)이 나오고 예와 다른 생각을 지어내거나 또는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면 그에 알맞은 이름, 곧 새말을 만들거나 받아들인다. 그러니 어느 나라에서 쓰는 낱말이 많고 적음을 가지고 그 나라 삶꽃이(문화가) 얼마나 높고 깊은가를 가늠하는 잣대로 삼는다.

  1957해(년)에 펴낸 『큰사전』에는 겨우 열여섯골(십육만) 남짓한 낱말이 실렸지만 1999해(년)에 나온『표준 국어 대사전』에는 쉰한골(오십일만)이 넘는 낱말이 올랐다. 마흔 해 동안 올림말이 네 곱절 가까이 늘어났다. 우리 삶꽃이(문화가) 그만큼 자라고 커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참(정)말 맞는 말일까? 속내를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순)우리말은 『큰 사전』보다 온에 20점이(퍼센트포인트)나 줄었고, 한자말은 온에 17점(퍼센트포인트) 늘어났다. 일이 이런데도 우리 삶꽃이(문화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는가? 한자말이 우리말 안방을 차지한 데 이어, 요즘은 하늬(서양)말이 우리말 안마당에 멍석을 깔고 있다. 잉글말을(영어를) 우리말(공용어)로 삼자는 사람까지 있다. 이쯤 되면, 생각이 바로 박인 사람이나 나라라면 우리말이 막다른 고비에 몰렸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눈으로 우리말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한자말이 이렇게 늘어난 까닭과 한자말(의) 갈래를 나누는 일은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올림말 가운데 한자말을 어떻게 손보아야 하는가 알아보기로 한다. 말글살이에 참(정)말로 쓸모가 있어서 우리말로 쓸 값어치가 있다 면 들온말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쓸 일이 없거나 쓰지 않아도 좋을 한자말은 솎아내야 한다. 그래야 한자말 을 몰아낸 빈자리에 밀려난 겨레말이 들어앉고 거기에서 움이 트고 자라서 우리말이 가멸어(풍부해)져 나라말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림말 열 가지에 한자말이 일곱이고 겨레말이 셋이라니!

  한자말은 우리 한아비(조상)가 몇 즈믄해(천년) 동안 써왔으므로 우리말이라고 하는데, 우리 겨레말과 한자말은 본디 뿌리가 다르다. 아무리 오래 써도 한자말이 겨레말로 바뀌는 일은 없다. 다만, 들온말로 받아들였을 때는 우리말이 된다. ‘하늘’(의) 뿌리가‘천(天)’이 아니고 인간(人間)이 ‘사람’(의) 뿌리도 아니지만 ‘도둑(盜賊), 배추(白寀), 지단(鷄蛋)’처럼 중국말을 들온말로 받아들이면 우리말이 된다. ‘나귀, 달구지, 보라(색)’는 몽골말에서, ‘메주, 선지(피), 호미’는 만주말에서, ‘가마니, 구두, 냄비’는 일본말에서 들어왔지만 그렇다고 몽골말, 만주말, 일본말을 몰밀어 우리말이라고 하지 아니하듯 한자말 또한 우리말이 아니다.

  이제, 『표준 국어 대사전』에 올림말로 실린 대충 서른닷골(삼십오만) 한자말을 나날살이에서 쓸 말과 버릴 말로 갈라내 보자. 이제껏 엄두를 내기는커녕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덮어둘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이 일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한국 어문 규정’의‘표준어 사정 원칙’제1부 제1장 제2항에“외래어는 따로 사정한다.”고 적혀 있지만, 막상 들온말 가르기는 (‘외래어 사정 원칙’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가려 낼 잣대부터 마련해야 했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몇 가지 잣대를 만들기는 했지만 앞으로 ‘우리말 다스림 수를(정책을) 맡은 곳’에서는 이 잣대를 가름할 쩍말없는 들온말 가르기 할대를 (‘외래어 사정 원칙’을) 만들어 말글벼리(‘어문 규정’)에 넣어야 할 것이다.

 

3. 한자말을 갈라내기에 앞서 뒷날로 미루어 둔 한자말

 

  한자말을 쓸 말과 버릴 말로 갈라내기에 앞서 섣불리 손댈 수 없는 한자말을 추려서 따로 젖혀두었다. 먼저, 사람 이름인데 본디 ‘우리말 말집(사전)’에 올릴 낱말이 아니다. ‘사람 이름 말집(사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다만, 덧붙일 말은 중국과 일본 사람 이름은 본디 그 나라 말소리대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온 누리 사람은 모두 ‘마오쩌둥’이라 하는데 오직 우리만 ‘모택동’이라 한다. 이건 아니다. ‘이등박문’도 ‘이토 히로부미’라 해야 하고 ‘성길사한’은 ‘칭기즈칸’이라야 한다. ‘李舜臣’이나 ‘이순신’이나 ‘충무공’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비록 한문글자로 지은 이름이지만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쓰는 것이 옳다. 그밖에 옛날 책 이름, 노래 이름도 ‘책 이름 말집(사전)’, ‘노래 이름말집(사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땅 이름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땅 이름(시, 군, 구, 동, 읍, 면, 리)은 ‘서울’만 빼고 모두 한자말 이름인데 그위집(‘행정 기)에서 쓰는 한문글자 이름이 아닌 본디 겨레말 이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가람(강) 이름, 메(산) 이름과 함께 ‘땅 이름 말집(사전)’을 따로 만들어야 하고 그 때는 본디 겨레말 이름을 되살려 쓰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또 짐승 이름, 새 이름, 물고기 이름, 벌레 이름, 풀 이름, 꽃 이름, 나무 이름도 되도록 겨레말 이름을 찾아 써야 할 것이다.

  믿음(종교)에서 쓰는 말 가운데서 ‘불교’에서 쓰는 말이 가장 많은데 이들 한자말은 우리 나날살이(일상생활)와 거리가 멀다. 짐작컨대 ‘팔만대장경’속의 글귀를 모조리 옮겨놓은 듯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갈말(학술어, 전문어)이 거의 다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뒤에 하늬(서양)말을 뒤치거나(번역) 새로 만든 한자말인데 우리는 이를 손 한번 대지 않고 그대로 베껴 쓴다. 일본에서 한자말로 뒤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갈말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쓰는 나날말 그대로여야 한다. 그런데 생뚱맞은 한자말로 따로 묶어놓았으니 우리 삶과 동떨어지고 담을 쌓게 된다. 하루바삐 우리말로 고치거나 새로 지어야 하는데 이 자리에서는 어떻게 할 길이 없다. 최 현배, 석 주명, 금 수현 선생 같은 깨인 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토박이말로 하면 이렇게 쉬운 것을 왜 몰랐을까?’ 이 어령 선생이 하신 말씀이다.

 

4. 한자말 마름질하기

 

  모든‘나날말(생활용어)’가운데서 나날살이에 쓸모가 없는 한자말을 대충 몇 가지 잣대로 갈라내어『표준 국어 대사전』책 바탕(의) 올림말에서 버릴 말로 꺾자를 쳤다. 다만, ‘젖혀둔 한자말’과 ‘꺾자 친 한자말’이 얼마가 되는지 여기서는 똑똑히 밝힐 수 없다. 하나하나 헤아려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한자말 가운데서 꺾자 친 낱말과 젖혀둔 사람, 땅, 책 이름, 삶자취(역사)에 나오는 말, 붓다가르침(불경)에서 쓰는 말을 뺀다면 온에 68.7(퍼센트)에서 온에 30 (퍼센트) 아래로 떨어지고 쓸모가 없거나 겨레말로 갈음할 수 있는 말까지 빼면 겨우 온에 10 (퍼센트)에 머물 것으로 어림(짐작)한다. 이 온에 10(퍼센트)를 다시 바깥말 거르기 모임(‘외래어사정위원회’)에서 들온말과 버릴 말로 판가름할 때 우리말은 비로소 해맑은 얼굴, 힘찬 몸매를 자랑하면서 나라말 임자가(주인이) 되어 우리 앞에 다가 올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솎아내야 할 한자말을 낱낱이 밝힐 수 없으므로 앞서 말한 잣대에 기대어 마름질한 몇몇 보기 말과 까닭을 보임으로써 올림말 살펴보기를 마무리 할까 한다.

  첫째, 옛 책에서 썼지만 요즘은 쓰지 않는 옛 한자말은 버린다. 거의 중국 옛말인데 이런 말은 오늘날 중국에서도 쓰지 않고 앞으로 우리가 쓸 일도 없다. ‘사서삼경(四書三經)’에 쓰인 글귀라도 오늘날 말글살이에 쓸모가 없는 것은 버린다. 아울러‘사자성어(四字成語)’굴레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굳이‘오비이락(烏飛梨落), 토사구팽(兎死狗烹)’따위를 쓸 까닭이 없다. ‘오이 밭에서 신 끈을 고쳐 매지 마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하면 왜 안 되는가? 우리 가 정작 알아야 할 것은 한문 글귀가 아니라 그 속에 든 가르침이다. 말을 듣고도 뜻을 모르는 말은 ‘화중지병’이 아니라 ‘그림 속(의) 떡’이다.

  둘째, 말소리를 듣거나 글자를 보아도 뜻을 알 수 없는 말, 옛날에도 두루 쓴 적이 없고 앞으로도 살려 쓸 값어치가 없는 말은 버린다. 보기: 가로(ⅸ蘆=갈대), 가성(佳城=무덤), 고가(雇價=모군삯), 재도(再度=또다시), 조년(갞年=지나간 해), 태말(太末=콩가루) 따위.

  셋째, 소리 같은 한자말이 가장 말썽이다. 한문글자 뜻을 알아야 낱말 뜻을 갈래지을 수 있다고 하는 한자말 말이다. 이런 말 때문에 한문글자를 가르치자고 하는데 터무니없는 소리다. ‘社會, 銀行’ 을 글자 뜻으로 풀이해 보라. 한문글자에 옭매인 생각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아주 쉽게 풀린다. 보기: 야로(冶爐)는‘풀무’, 야로(夜路)는‘밤길’, 야로(夜露)는‘밤이슬’, 야로(野老)는‘시골늙은이’, 야로(野路)는‘들길’따위.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할까?

  넷째, 뜻이 같은 한자말이 매우 많다. 서너 가지에서 많게는 두온(이백) 가지에 이른다. 보기: 집안일= 가간사(家間事), 가내사(家內事), 가무(家務). 민들레=금잠초(金簪草), 지정(地丁), 포공영(蒲公英), 포공초(捕公草). 꾀꼬리=창경(뎙ь), 황금조(黃金鳥), 황리(黃見), 황앵(黃鶯), 황앵아(黃鶯兒), 황작(黃雀), 황 조(黃鳥). 편지=간찰(簡札), 서간(書簡), 서신(書信), 신서(信書), 찰한(札翰), 척간(尺簡), 편저(片楮) 따위 백아흔 가지. 이런 말을 하나하나 외어서 써야 할까? 이 따위 글자 장난에 한눈 팔 겨를이 없다. 모조리 솎아낸다.

  다섯째, 겨레말과 뜻이 같은 한자말도 많다. 겨레말이 있는데 굳이 한자말을 쓸 까닭이 없다. 보기: 역할(役割)=구실, 일부(日附)=날짜, 고채(苦菜)=고들빼기, 파릉채(볟箇菜)=시금치, 수효(水쟸)=갈매기, 수조(手爪)=손톱. 도령(挑鈴)=도돌방울 따위. 달걀을 ‘鷄卵(계란)’으로 쓴다고 ‘황금알’이 되는 것도 아니고, ‘鷄蛋(지단)’, ‘玉子(다마고)’라고 하는 중국과 일본 사람이‘鷄卵(계란)’을 알 턱이 없다. ‘한자 문화권’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여섯째, 소리가 바뀌어 들온말이 된 말(의) 본디 한자말은 버린다. 말밑을 밝힌다는 생각으로 실었다지만 올림말에서는 빼고 말밑을 풀이할 때 쓰면 된다. 보기: 고초(苦椒)=고추, 관혁(貫革)=과녁, 보패(寶貝)=보배, 도적(盜賊)=도둑, 석류황(石硫黃)=성냥 따위.

  일곱째, 나라 땅 이름을 소리를 따(音借) 중국과 일본에서 만든 한자말 이름을 쓰면 우리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보기: 프랑스=불란서(佛蘭西), 도이치란트=덕국(德國), 독일(獨逸), 로스앤젤레스=나성(羅城), 도쿄=동경(東京),베이징=북경(北京),상하이=상해(上海),베트남=월남(越南),잉글랜드=영국(英國,英吉里), 아메리카국=미국 따위. 대학마저도 아직 ‘영어영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서반아어과’따위 ‘병신말’을 쓰고 있다.

  여덟 째, 일본에서 서양말을 잘못 뒤쳐(飜譯)만든 한자말을 덮어놓고 따라 쓴다. 보기: 적과흑(赤과黑),혈과사(血과沙),신곡(神曲),춘희(椿姬),마적(魔笛),축제(祝祭),백조의 호수(白鳥의湖水)따위. 참으로 낯뜨거운 일이다.

  아홉 째, 겨레말을 소리대로 한문글자로 쓴(音借) 한자말과 억지로 얽어 짜서 만든 한자말은 버린다. 우리에게는 남부끄러운 내림버릇(DNA)이 있다. 한문글자라면 주눅이 들어서 보기만 해도 움츠러든다. 옛날, 양반이 내뱉는 한자말은 다락같이 높아서 쳐다보기도 무서웠다. 한자말은 높고 힘이 있는 말이고, 겨레말은 못 배운 시골(촌)놈 무지렁이나 쓰는 낮고 나라운(천한) 말이었다. 이 버릇이 아직도 겨레핏줄 속에 흐르고 있다. 나라일꾼(공무원)은 바로 옛날 벼슬아치다. 그러니 쓰는 말도 한자말이라야 하는가. ‘刀魚(갈치), 沈藏(김장), 沈菜(김치)’는 옛날 벼슬아치들이 지어 쓴 한자말이고, 오늘날에도 ‘美靴員(미화원=구두닦이), 美化員(미화원=청소부), 少株密植(소주밀식=적은포기베게심기)’따위  한자말을 끈질기게 만들어 낸다. 이 따위 말 아닌 말은 샅샅이 찾아 솎아낸다. 그리고 이 밖에 국어연구원에서‘순화대상어’로 잡은 한자말도 모조리 꺾자를 쳐 몰아낸다.

 

5. 마무리

 

  우리말이 갈 길을 잃고 이렇게 오랫동안 헤매고 있는 것은 얼떨결에 길을 잘못 들어섰기 때문이다. 나라를 되찾은 뒤 맨 처음 일어난 ‘우리말 도로 찾기일(운동)’이 왠지 모르게 ‘한글만 쓰기(운동)’(으)로 빗나가면서 그만 뒤죽박죽이 되었다. ‘우리말 도로 찾기일(운동)’이야말로 우리말을 갈고닦고 펼치는 올바른 길이었다. 그 일(운동)을 넓혀서, ‘우리말(의) 이름’을 꼬집어 밝히고-명토박고(국어는 우리말 이름이 아니다.)- ‘우리말 뜻매김’을 한 뒤 ‘들온말잣대’를 만들어 한문글귀, 중국한자말, 우리한자말, 일본한자말, 하늬(서양)말을 모조리 한데 모아놓고, 막을 것은 막고 거를 것은 거르고 다듬을 것은 다듬어서 꼭 쓸 말을 들온말로 받아 들였다면, ‘한글이냐 한문글자냐’ 하는 글자싸움으로 예순여덟 해를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漢자로 끝내字’,‘가go, 보go, 듣go, 놀go, 먹go’따위 ‘귀신 씻나락 까먹는 짓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겨레 앞날이 눈앞에 선히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바로 잡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다만, 한문글자에 얼이 빠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운 것이다. 장사치들이야 돈벌이라면 무슨 짓을 못할까마는, 그래도 제 딴엔 배웠다는 든 사람들, 겨레를 이끈다는 난 사람들 몇몇이 나서서 “國語의 70퍼센트 以上인 漢字語를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들로부터 言語能力을除去하는 것이며, 言語能力除去는 곧 人間의 思考能力을 除去하는 結果를 招來하므로써 理解와 應用等 深化的 學習이 不可能하다.” 고 나팔을 부는, 터무니없는 생각 말이다. 해마다 『교수신문』에서 새해 바람을 담았다고 보여준 사자성어 ‘전미개오(轉迷開悟)’ 따위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물러서서도 안 되고 그만둘 수도 없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곧바로 ‘우리말 도로 찾기일(운동)’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이번에 때를 놓치면 몇 온해가(백년이) 지나도 우리말은 나라말 자리에 차고앉지 못한다. 가(변)두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다가 시나브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 것이다. 모든 마련(채비)도 갖추었고 때는 바야흐로 무르익었다. 더 망설일 까닭이 없다. 새해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힘차게 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김정섭 글쓴이 purnhans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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