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하루 발걸음 13] 부지깽이

2021.09.21 18:06:13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3] 부지깽이

 

나는 울보였다. 어머니가 가는 자리마다 졸졸 따라다녔다. 밭에 가도 따라가고 마실가도 따라갔다. 어머니가 눈앞에 없으면 울고 마을을 돌며 찾는다. 하루는 어머니를 찾으러 갔다가 어머니가 마을사람들과 오래 있지 못했다. 나 때문에 어머니는 집에 왔는데 나는 또 밖에서 놀다가 해가 저물어서야 집에 왔다. 대문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부엌에서 부지깽이를 들고 “이눔무 가시나” 하면서 문턱을 넘고 마당에 뛰쳐나왔다. 나는 어머니한테 맞지 않으려고 골목으로 내뺐다. 걸음아 나 살려 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긴 골목을 돌고 점방 모퉁이를 돌아 목골 찬이네 앞까지 달음박질쳤다. 어머니는 부지깽이를 들고 “거기 안 서나” 하고 소리 지르며 점방 모퉁이를 돌고 따라오다 뭐라 뭐라 말하고는 따라오기를 멈춘다. 사백 미터 조금 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렸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다가 밥 먹을 때쯤에 들어가면 부지깽이로 맞는 일은 비껴간다. 나는 열 살 적까지 어머니를 꼼짝 못 하게 따라다니고 떨어지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학교도 안 간다고 울었다. 그런데 내가 무서워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광대네 할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장골에 사는 숙이네 아랫집까지 마실 다녔다. 내가 울면은 치마를 허옇게 입고 다가와서는 다 빠진 이를 드러내고 “이놈의 가스나 울기만 해 잡아먹는다.” 했다. 나는 그 할머니가 무서워 울음을 뚝 그치고 어머니 치마폭을 뒤집어쓰고 집에 들어갔다. 그래서일까. 어머니 치마폭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하도 울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서 놀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가마솥에 불을 지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까만 부지깽이로 불을 살리고 활활 타도록 휘젓고 불티를 보면서 잘살아 보려고 애썼겠지. 할아버지가 거덜낸 우리 집을 활활 타오르듯 일으켜세우려던 마음도 뜻대로 안 되고 졸졸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딸래미로 속만 붉게 탔을까. 부지깽이에 붙은 불을 잿더미 밑에 찔러 끈다. 부지깽이는 내가 어머니 속을 새카맣게 뒤집어 놔도 끝만 타다 꺼지고 매운 바람을 내며 사그라졌다. 불을 다스릴 부지깽이가 내 불을 다스릴 줄이야.

 

2021.09. 21.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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