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8] 담배꽃

2021.09.21 18:06:04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8] 담배꽃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는데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웠다. 팔을 뻗어 긴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꺼내 마른잎을 비벼서 가루를 내어 작은 통에 가득 담고 화롯불에 대고 빨면 불꽃이 일지 않고 불이 붙는다. 긴 대로 빨아들여 입에 머금다가 천천히 내뿜는다. 천천히 아껴가면서 오래 피운다. 할아버지 곰방대는 “대꼬바리”라 했다. 우리 집은 밭이 넉넉하지 않아 담배를 심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잎을 얻어다 피웠다. ‘희연’이라는 이름으로 담배를 자루에 담아 팔았지만 돈 주고 살 만큼은 안 되어 할아버지는 담배 동냥을 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 없이는 세 발짝도 못 걸었다. 할아버지 방에서 골목까지 걸어 나오자면 한 시간은 걸렸다. 다른 집 할아버지는 들일 밭일을 하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하루를 집에서만 가만히 보내자니 얼마나 지겨웠을까. 티브이도 없어 철이네 할머니 하고 길가에 앉아서 이야기하며 담배를 피우며 하루를 버틴다. 할아버지는 배가 고파 하얀바람을 마셨을까. 푸념만 들고 하루를 버티는데 얼마나 힘들까. 어머니가 큰집이나 찬이네 밥을 들에 날라주고 할아버지하고 어머니 둘밥 얻어먹으면 먹을거리는 없었다던데, 아버지가 경운기를 배운 뒤로 집이 일어났다. 우리는 산에 다니면서 진달래를 따먹고 삘기도 뽑아 먹고 잔대도 캐먹고 딸기도 먹고 앵두도 먹고 찔레도 꺾어 먹지만, 할아버지는 앵두만 맛볼 뿐 주전부리가 거의 없었다. 마당에 조그마한 텃밭을 꾸며서 한두 뿌리 심으면 할아버지 심심풀이로 잘 키워내지 싶다. 우리 할아버지 곰방대 물고 담배 피우는 모습은 멋있었다. 곰방대를 한 손에 들고 하얀바람 한 모금 빨 때와 천장으로 한 모금씩 뿜는 할아버지 얼굴이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뭔가 생각이 많아 보였다. 담배는 배고픈 우리 할아버지 주전부리였겠지. 움직이지 못해 마음대로 어디를 가지도 못하느라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흰바람을 보며 하루를 지루하지 않게 버티었을까.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담배꽃처럼 곱게 피어 보지 못하고 사라진 담배 연기같다.

 

2021. 09. 21. 숲하루

숲하루 글쓴이 jung156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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