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2 맷돌
맷돌 살 돈이 없을 적에는 마을에서 돌려가며 쓰는 돌을 썼다. 맷돌에는 돌구멍이 있어 암놈 수놈을 끼우고 돌린다.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맷돌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열아홉에 혼례를 했지만, 방이 하나뿐인 살림이었다. 방 한 칸을 가로 긋고 시아버지인 아픈 우리 할아버지와 함께 썼다. 세간살이라고는 구멍 난 솥하고 숟가락 하나뿐이다. 시집온 그해 아버지가 붉은감 줍자고 해서 재 너머 효선골에 떨어진, 먹기 아까울 만큼 잘 익은 감을 주워서 탑리역까지 이고 가서 팔았다. 돌아오는 길에 감 판 돈으로 새미 못둑 과수원에서 사과를 사서 집으로 오는 길에 불래마을 사람한테 팔고 효선마을 사람한테 팔았다. 그 뒤로 어머니는 두부를 쑤었다. 어머니가 살던 가음 장터에 가서 두부 쑤는 길을 배우고 찐빵도 배웠다. 마을에서는 새신부가 친정 간 줄도 모르고 달아났다고 헛소문이 났단다. 오는 길에는 가음 장터에서 생선을 떼서 오는 길에 팔고 다시 생선을 떼러 가면 또 달아났다고 헛말이 돌았다. 마을사람은 하나같이 새신부가 못사는 집에 와서 버티지 못하고 달아난다고 말했다. 그럴수록 어머니는 악착같이 살았다. 이제 마을 맷돌을 빌려서 두부를 쑤어 팔 만큼 되었다. 어버지는 큰집에서 일하고 어머니 혼자서 큰오빠를 업고 땔감을 주워다 불을 지폈다. 한 손으로 돌리고 힘들면 손을 바꾸어 가면서 콩을 떠넣었다. 어처구니 손잡이가 빠지면 헝겊을 박아 따로 놀지 않게 끼우고 돌렸다. 자루에 끓인 두부를 퍼담을 적에는 새끼줄을 문고리에 묶고 잠자는 어린 큰오빠를 깨워서 자루를 꼭 붙들게 하고 두부를 쑤었다. 새색시가 시집와서 큰오빠 작은오빠 나까지 낳고 넷째를 낳을 무렵에서야 언덕집을 사고 두부 파는 일을 그만두었다. 어머니한테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어머니는 얼마나 아득했을까. 눈물을 또 얼마나 흘렸을까. 참말로 달아나려고 헤아릴 수 없이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생각도 할 틈조차 없이 얼른 두부를 쑤어서 팔아야 쌀하고 보리로 바꿔 밥을 지어 어린 우리 먹이려고 발버둥치고 어린 우리가 있어 버틸 힘을 냈는지 모른다. 묵직한 맷돌처럼 돌리고 돌려도 어긋나지 않게 견디고 버티어 주었다. 맷돌에 콩 한 줌 넣는 놀이는 놀라웠다.
2021. 09.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