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0] 막걸리
동생하고 나는 아버지가 드실 막걸리 심부름을 도맡았다.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를 들고 다녔다. 달빛이 밝은 날에는 길이 잘 보였다. 그런 날은 느긋하게 걷고 달이 안 뜨는 날에는 캄캄해서 개울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순이네 담벼락을 잡고 걷는다. 우리 집에서 전방(가게)까지 거리가 삼백 미터 남짓이다. 영이네 어머니는 국자로 단지에 담긴 술을 퍼서 내가 갖고 간 주전자에 담는다. 술을 휙 젓고 주전자에 붓는 소리가 시냇물 흐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막걸리는 반 되 받는 날도 있고 한 되나 두 되도 받는다. 그런데 주전자를 건네받고 나면 손이 부끄럽다. 영이네 어머니가 돈 달라고 기다리는 눈빛이 돈 없다고 깔보는 듯해서 풀이 죽는다. ‘또 외상이가?’ 하는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었다. 내가 막걸리 심부름 가기 싫은 까닭이다. 아버지가 들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언제나 여덟 시쯤 된다. 시골이라 해도 빨리 떨어지는데 캄캄하도록 일하고 오신 아버지는 막걸리를 밥그릇에 부어 아주 맛있게 드신다. 입을 털고 ‘카’ 하고 길게 소리 내며 마셨다. 가끔 놀다가 밖에서 마시고 온 날이거나 속상해서 거나하면 어머니한테 막말을 했다. 막걸리를 많이 드시는 날에는 아버지가 말이 많다. 그런데 모두 몇 낱말 안 되고 막말로 들렸다. 여느 때 아버지 헛기침은 아버지 말씀이었다. 막걸리는 전방에서는 술도가에서 받아와서 팔고 우리는 술을 담아서 먹다가 떨어지면 사 먹는다. 막걸리에는 누룩이 들어가는데 장만하려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집에서 술을 계속 빚어 먹지는 못했다. 세무서에서 술을 살피러 나와서 몰래 담근다. 살피러 오는 날에는 마을 사람들은 뒷간에 쏟아붓는다. 산에 묻기도 했지만 무거운 단지를 들고 짧은 시간에 숨구다(숨기다) 다글리면(들키면) 벌금을 내야 한다. 오두막 우리 집같이 못 사는 집에는 잘 안 오고 잘 사는 집으로 다녔다. 막걸리를 농주라 하고 우리 아버지는 늘 풀과 씨름하고 배가 고파서 배가 불러라고 마셨다. 배고파서 먹는데 왜 막걸리를 집에서 못 담그게 할까. 먹을거리가 모자랄까 못하게 했지 싶다만 막걸리는 배도 부르게 하고 고된 삶을 한동안 잊게 해주는지 모른다.
2021. 08. 10.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