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21. 라디오
책상맡에 앉아 책을 읽는데 문득 아들이 부른다.
“엄마, 엄마는 귀에 꽂고 듣는데, 노래는 어디서 나와?”
“라디오.”
“그래? 엄마, 방에서도 들을 수 있나?”
“그럼 들을 수 있어, 테이프 쪽 단추를 라디오 쪽으로 밀어. 다음은 볼록한 단추를 돌려서 빨간 줄을 88.1에 맞추고 또렷하게 소리가 들리면 손을 떼. 그러면 나와.”
“어, 참말이네!”
“빨간 줄을 다른 자리에 옮겨도 나오지만 뭘 하면서 듣기에는 시끄러워. 그냥 한 자리에 두고 들어 보렴. 소리는 낮추고.”
“알았어. 엄마.”
“곧 있으면 옛노래가 나올 거야. 가리지 말고 들어 보아.”
“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너무 재밌어!”
“책하고 노래만 있으면 하나도 안 심심해. 이제 좋은 동무 둘 생겼네.”
날마다 틀어 놓은 라디오 소리가 그날에야 귀에 들어왔을까. 노느라 들리지 않았지 싶다. 아들이 집에서 영어 듣기를 했다. 아들은 새것을 받아서 쓰고, 딸아이가 쓰던 오랜 것은 내가 물려받아 라디오로 삼는다. 딸한테서 물려받은 것은 작아서 자리를 덜 차지하니 책상에 올려 두었다. 아들은 영어를 듣는 카세트에서 라디오도 나오니 그날부터 이 소리에 귀가 트인다. 이제는 노래를 들으며 공부를 한다.
나는 일할 적이나 책을 읽을 적에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누가 부르면 못 들을 적이 많았다. 대꾸를 안 해서 사람을 자꾸 부르게 하고 들은 척을 안 한다는 말을 듣는다.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혼자 여러 가지를 하다 보니, 전화를 받으면서도 눈하고 귀하고 손을 같이 썼다. 자꾸 하다 보니 두 귀를 따로 썼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고 다른 귀는 둘레 소리를 듣는다. 두 귀를 모두 틀어막으면 누가 말하는 소리를 바로 듣지 못했다.
요즘은 노래를 두 귀가 듣지 않는다. 아홉 해째 날마다 노래가 흐르는 자리에서 일하는데도 제대로 끝까지 들리는 노래가 없다. 틀어 놨으나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다. 예전에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기쁠 적에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슬플 때는 가라앉은 마음을 끌어올려 주었다.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노랫소리를 들으면 약을 한 알 먹는 마음이 든다. 그때는 아이들로 얼을 빼고 이때는 일이 얼을 뺀다. 노랫가락이 마음을 찌릿찌릿 살짝 건드려 주는데 나도 모르게 툭툭 털고 일어선다.
이제 예전처럼 집이나 일터에서 노래를 듣지 못하고 길에서 듣는다. 아침에 일터에 나가면서 차에서 듣고 낮에 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차에서 듣는다. 예전하고는 다르게 요새는 노래를 들으면서 책을 읽으려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머리를 죈다. 노래를 틀어 놓으면 좋을까 싶어 들으려 하면 오히려 노래도 듣지 못하고 책도 안 읽힌다. 두 마음을 쓰느라 머리가 풀리지 않고 더 조인다. 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풀고 싶지만, 차에서만 개운하게 들릴 뿐 몸이 마음대로 안 따라 준다.
우리 아들은 나와 다르다. 귀로 듣고 손으로 친다. 손 놓은 피아노를 고등학교에 가서 다시 쳤다. 큰 피아노가 작은누나 집에 있어 옮겨오기가 번거로웠다. 생각 끝에 작은 디지털 피아노를 장만했으나, 건반 수가 적고 소리가 얕다고 뚜껑을 덮어 두는 날이 잦았다. 이러다가 곁님이 체육대회에 나가서 커다랗고 까만 디지털 피아노를 탔다. 집을 옮긴 뒤로는 커다란 피아노가 방에 안 들어가서 마루에 놓았다. 날마다 틈나는 대로 쳤다. 라디오에서 들은 어느 노래가 마음이 꽂힌 뒤로는 이 노래만 바지런히 쳤다.
귀에 소리통을 하고 쿵쿵 짝짝 건반을 누른다. 처음 소리를 들을 적에는 윗집에서 스며드는 줄 알았다. 소리를 따라 찾아가면 아들은 티브이 앞에 서서 몸을 뒤튼다.
“뭐하나?”
“아무것도 아니야!”
“피아노 치다 일어난 듯한데?”
“운동해.”
“근데 왜 엄마가 나오면 안 쳐?”
“그냥.”
말을 마치고 쭉 뻗은 팔을 내리며 방으로 쏙 들어간다. 또 내가 방에 들어가면 나와서 친다. 아리송해서 고개만 갸웃거렸다. 엄마가 들으면 부끄러운가. 엄마가 집에 없을 적에만 치고 보면 딴짓하다 들킨 사람같이 발딱 일어난다. 대학 가서도 스스로 피아노를 치고 싶어 했다. 가르치는 사람이 없이 한 시간 동안 피아노만 치는 학원에 나갔다. 대전에서 학교 밖을 나오는 일이 되었고 라디오에서 들었던 노래를 치면서 부쩍 움직였다.
어느 날 우리한테 소리를 들려주었다. 할아버지하고 삼촌이 왔을 적에 스스럼없이 쳤다. 엄마가 들을까 꺼리더니 모두 앞에서 쳤다. 쿵쿵 소리가 기계소리 같아 좋은 줄 모르겠던데, 손가락이 피아노에서 사뿐사뿐 뛰어놀아서인지 모두 잘 친다고 말을 보탰다. ‘꽃춤(플라워댄스)’ 인가, 무슨 노래인지 알려주었는데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 이 노래 어릴 적에 들었다. 엄마 이 노래 뭔지 아나?”
엄마한테 옛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날 들려주던 노래를 나는 글로 지어 보았다.
‘엄마, 흰눈도 손전화 해
하늘에서 노래가 어디서 나오나
구름을 켜면 라디오 소리 날까
엄마, 방에서도 들을 수 있나? 별이 노래하는 소리
라디오로 별빛 달빛 맞추면 내내 노래 나오지
참말이네
소리 작게 놓고 배우고 귀도 놀고
알았어, 엄마
아마 조금 있으면 달에서 토끼들이 방아 찧는
옛노래도 나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참 놀라워
꿈에서도 노래를 듣는 그 어릴 때 아들
아니, 너 어렸을 적 옛노래 좋아했는데
엄마, 이 노래 들어 봤나?
푸른 옷소매 가락으로 켜는 꿈노래
저 숲에서도 들리는 줄을
송이송이 내리는 흰눈이 기쁘게 불러
엄마 들어 봤나, 꽃들이 피는 봄철
비탈리 사콘느, 드보르 신세계, 1812 머릿노래 같지 않아?
흰눈이 내릴 때마다
노래 자리가 돌아가는 소리.’
아들 열 살 적에 엄마가 옛노래를 가장 자주 들었다. 마음을 다독여준 소리였다. 피아노보다 바이올린 소리가 가슴 깊이 파고들고 높고 낮게 깔면서 부르는 노래가 듣기 좋았다. 아들이 놀라며 듣던 라디오 소리인데, 이제 스무 살이 넘어서는 피아노를 쳐서 몇 가락 들려준다. 그때 듣고 자꾸 들어서 귀에 무척 익다. 아들하고 함께 듣던 소리는 ‘우리 옛노래’이다.
2021.2.2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