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책 읽기 7 조선 사람

2021.01.23 14:24:36

다 다른 사람은 어떤 삶을 짓는가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7

다 다른 사람은 어떤 삶을 짓는가


《조선 사람,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
 백종원 글
 삼천리
 2012.9.14.


  한겨울에 시골집에서 반바지차림으로 지냅니다. 서울쯤 되는 곳에서라면 이렇게 지내지 못할는지 모르나, 고흥에 있는 시골집에서는 바깥에서도 반바지차림으로 지냅니다. 다만, 읍내나 면소재지로 마실을 갈 적에는 긴바지를 입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길 때문에 긴바지를 입는다기보다 ‘그냥 옷’이니까 긴바지를 입고 나갑니다. 집에서는 ‘그저 반바지’차림으로 있습니다.


  한겨울 고흥에서 바깥은 영 도 밑으로 내려가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우리 집안은 바람이 잘 드나들어 15∼16도쯤 되고, 조금 포근한 날에는 17∼18도쯤 됩니다. 바깥 날씨가 영 도 밑이라면 긴바지를 입을 만하지만, 영 도 밑이 아니라면 반바지를 입어도 안 춥습니다.


  그러나 누구는 두툼한 바지를 입어도 이 겨울에 추워요. 왜냐하면, 사람마다 몸이 다르거든요. 이를테면,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사는 사람이 이 나라에 와서 지낸다면 두툼한 솜옷을 입어도 추울 만합니다.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에서 사는 사람이 이 땅에 와서 지낸다면 어떠할까요?


  《조선 사람,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백종원, 삼천리, 2012)를 읽습니다. ‘재일조선인 1세’로서 겪은 20세기 이야기가 고요히 흐릅니다. 재일조선인으로 일본에서 살아온 나날이 차분히 감돕니다.


  백종원 님은 한 마디로 말합니다. ‘나는 조선사람’이라고 말이지요. 어느 곳에서 태어나든 ‘조선사람’이고, 어느 곳에서 살든 ‘조선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조선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훌륭하거나 뛰어날까요? 아닙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덜떨어지거나 어리숙할까요? 아닙니다. 조선사람이 일본사람보다 낫지 않고, 일본사람이 중국사람보다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아름다운 사람이고, 저마다 사랑스러운 이웃이요 동무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삶을 짓습니다. 전라남도 바닷마을과 서울 한복판 잿빛집(아파트)에서 짓는 삶은 다릅니다. 강릉과 목포에서 짓는 삶은 서로 다릅니다. 남녘과 북녘이 짓는 삶은 다르고, 중국과 일본에서 짓는 삶은 다릅니다. 나라와 겨레마다 다를 뿐 아니라, 삶터마다 다 다릅니다. 내가 이렇게 한대서 너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이 밥을 먹으니 내가 이 밥을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네 차림새대로 옷을 입어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내 차림새대로 옷을 입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네 머리카락 모습을 따라야 하지 않습니다. 네가 내 머리카락 모습처럼 길게 기르거나 짧게 쳐야 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우리는 다 다른 우리 삶을 저마다 즐겁게 지어야 합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말’을 쓰면서 ‘다 다른 사랑’을 가꾸면서 ‘다 다른 이야기’를 노래할 때에, 비로소 아름길(평화)입니다.


  일본은 그만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이웃나라를 총칼로 짓밟았습니다.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일본은 이 땅에서 나고자라는 사람을 괴롭히기도 했는데, 일본에서 나고자라는 사람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짓은 나와 너 모두를 괴롭혀요. 오늘날에도 일본 벼슬꾼(정치조직)은 재일조선인뿐 아니라 숱한 이웃사람을 괴롭히지요. 그리고 이 바보짓은 고스란히 저 스스로를 겨냥해요.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은 바로 ‘내가 스스로 괴롭히는’ 꼴이거든요.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내가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아끼는 사람은 바로 내가 스스로 아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싸움을 일으키려는 사람은 이녁 스스로 아끼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따돌림과 괴롭힘을 일삼는 사람은 이녁 스스로 이녁 삶을 아름답게 짓지 못하는 노릇입니다.


  일본이 앞세운 총칼에 짓눌려야 했던 여러 나라 여러 겨레도 괴로운 일이었으나, 총칼로 이웃을 짓누르는 사람은 바로 스스로 짓누르는 셈입니다. 스스로 괴로운 짓을 하면서 스스로 괴로운 줄 모르거나 잊는 셈입니다.


  그런데 일본이란 나라와 터전을 보면, 그네들 스스로 어떤 짓을 했는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제대로 느끼지 못하니 제대로 알지 못하며, 제대로 알지 못하니 제대로 살지 못해요.


  네가 나를 때렸으니 ‘네가 잘못했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맞은 사람은 두 발 뻗고 잠들어도, 때린 사람은 두 발을 못 뻗으며 잠도 못 자기 마련입니다. 남을 괴롭히거나 들볶는 사람은 스스로 굴레에 갇힙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으며, 남을 아끼는 사람이 되어야 언제나 웃으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싸움연모(전쟁무기)로는 아름길(평화)을 열지 못해요. 싸움연모로는 싸움만 끌어들입니다. 싸움연모로 이웃을 괴롭힌 사람은 싸움연모를 죄다 버리면서 스스로 삶을 뉘우치면서 돌아보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일본이란 나라와 터전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그네들 스스로 싸움연모를 못 버리기도 하면서, 그네들 스스로 삶을 뉘우치거나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다른가요? 아무래도 우리나라도 일본하고 비슷해요. 우리도 일본 못지않게 싸움연모를 엄청나게 끌어안습니다. 이 나라와 터전도 싸울아비(군대)와 싸움연모를 줄일 생각이 없습니다. 아름길과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우리부터 스스로 참다운 길을 걷지 못합니다.


  나라나 살림이 발돋움하는 길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끌어들여서 ‘경제성장’을 해도 이럭저럭 발돋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는 겉치레일 뿐입니다. 나라나 살림이 참답게 발돋움을 하자면, 스스로 삶을 지어야 합니다. 나라지기(대통령)도 텃밭을 일구어야 하고, 벼슬꾼(국회의원과 공무원)이나 돌봄이(의사)나 글꾼(신문기자와 작가)도 텃밭을 가꾸어야 합니다. 시골뿐 아니라 서울에도 텃밭이 집집마다 있어야 하고, 모든 집에는 마당이 있어서 나무를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집집마다 텃밭과 마당에서 흙을 만지고 풀을 뜯으며 나무를 보살피면서 하루를 열고 낮을 보내며 저녁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에 비로소 나라나 살림이 발돋움합니다. 이럴 때에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삽니다.


  임금님이니까 똥거름을 안 져도 되지 않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이니까 흙을 안 지어도 되지 않습니다. 교사나 교수이니까 나물을 안 뜯어도 되지 않습니다. 과학자나 기술자이니까 나무를 안 심어도 되지 않습니다.


  나라나 살림이 뒷걸음을 치는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나라힘(정치권력·사회권력)을 거머쥐려는 이들은 모두 흙과 등을 집니다. 힘과 돈과 이름을 거느리는 이들은 모두 시골과 등을 돌립니다. 글을 깨작거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풀도 꽃도 나무도 모르기 일쑤입니다. 여느 일꾼(회사원과 노동자)은 하늘을 올려다볼 겨를이 없는데다가, 별도 해도 바람도 구름도 안 쳐다봅니다.


  이야기책 《조선 사람》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텃나라로 삼는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제 뿌리를 사랑하면서, 이웃과 동무가 태어난 뿌리를 함께 사랑하려는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이 푸른별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가슴에 ‘아름꽃(평화)’이라는 이야기를 새겨서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기를 바라는 숨결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할 일이란 참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삶짓기입니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한테서, “조선 사람이 왜 일본에 살고 있는가” 하는 말을 들을 때가 많다. 60만 명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은 주로 토지를 수탈당했거나 징용, 징병으로 일본에 끌려오거나 강제로 이주된 사람들과 그 후손이다. (59쪽)

 

만철은 유능한 조사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기관은 소련이나 중국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산업과 교통에서 기후, 풍토, 수질, 질병, 민족, 종교, 풍속, 관습에 이르기까지 온갖 분야를 상세하게 연구했는데, 연간 예산이 옛 도쿄제국대학에 필적할 정도로 방대했다고 한다. (103쪽)

 

우리 조선인 학생들은 한가로이 찻집에나 처박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사지로 내몰리지 않으면 안 될 조선의 학생들에게 한마디 위로라든가 의미 있는 말은커녕, 일본의 지배자들과 한목소리로 ‘성전승리’를 위한 전장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야말로 ‘조선인으로 영광’이라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최남선은 뒷날 괴뢰 ‘만주국’의 고급 관리를 양성하는 건국대학의 교수가 되고, 이광수는 ‘황도문화’를 선전하는 문인보국회에 들어갈 정도로 타락하게 된다. (181쪽)

 

일본 제국주의의 패배라는 근본적인 변혁기에 즈음하여 이은 씨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상담하기 위해 만수사에 온 듯했다. 그런데 스님은 “당신은 열한 살에 인질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끌려갔기 때문에 조선이 멸망하는 데 직접적인 책임은 없소. 하지만 우리 민족이 수난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당신은 왕족 대우를 받아 육군 대장도 되고 참담한 민족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의 비호를 받으면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지요. 이 점을 당신은 스스로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스님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민족 앞에 사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조선으로 돌아가 똥거름도 지고 백성으로서 농사를 짓고, 방자 씨는 보육원이나 유치원의 보모가 되어 열심히 조선의 아이들을 돌본다면 민족은 당신들을 용서할 것이오.” (233∼234쪽)

 

조선에 대한 멸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 사회에 뿌리 깊이 남아 있지만, 이는 에도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메이지유신 후 ‘정한론’ 속에서 퍼지며 청일·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점점 더 커지게 된 사회적 풍조라고 생각된다. (258쪽)

숲노래 글쓴이 hbooklove@naver.com
Copyright @배달겨레소리 Corp. All rights reserved.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5길 189-8 등록번호: 경북, 아00595 | 펴낸날 : 2020.6.8 | 펴낸이 : 최석진 | 엮는이 : 박연옥 | 전화번호 : 010-3174-9820 Copyright @배달겨레소리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