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빼어난 우리말

2020.10.29 21:28:22

[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이 글을 우리말에 눈뜨게 해주신 이오덕님과 빗방울 김수업님께 바칩니다.)

 

 

  저는 우리말이 대단히 빼어나고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우리말이 빼어난 까닭을 짚어보면

첫째, 낱말이 넉넉해요. 낱말 수가 많은 것은 우리 겨레가 누리 속에 살면서 누리가 바뀌어 가고 돌아가는 속내를 일찍부터 깊이 살펴보고 살아왔음을 드러내는 거겠지요.

 

  이를테면, ‘비’를 보기로 들면

먼지잼(비는 오지 않으나 먼지가 물기에 젖어 땅에 가라앉음),

는개(늘어진 안개-안개가 땅 가까이로 떨어져 내림),

이슬비(비는 오지 않으나 나뭇잎이나 풀잎에 이슬이 맺혀 떨어져 내림),

가랑비(가루처럼 아주 가늘게 오는 비),

보슬비(보슬보슬 내리는 비) 같이

아주 가는 비에서부터

단비(가물려고 할 때 알맞게 오는 비),

꿀비(꿀처럼 단 비),

발비(빗방울이 발을 친 듯 줄을 지어 보이게 오는 비),

장대비(장대가 떨어지듯 빗방울이 굵게 쫙쫙 내리는 비),

작달비(굵직하고 억세게 퍼붓는 비),

소나기(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여우비(볕이 쬐는 날 잠깐 오는 비),

된 비(몹시 세차게 쏟아지는 비),

개부심(명개를 부시도록 오는 비)

*명개는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는 검고 부드러운 흙,

복물(한 더위에 오는 비),

이 밖에도 봄비, 잠비(여름비), 떡비(가을비), 찬비(겨울비) 같은 말이 있어요.

 

  누리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일만 잘 살펴본 게 아니고 우리 겨레는 가장 일찍 벼 여름지이(벼농사)를 했음이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 마을 옛 돌연모(구석기)때 삶터에서 나온 59톨 볍씨에서 드러났어요.

이 볍씨를 찾아내기 앞에는 온누리에서 가장 일찍 벼를 기른 곳은 양쯔강 언저리로 알려져 있었죠. 곧 쫑궈 호남성 옥섬암 동굴 유적에서 나온 볍씨가 이제부터 11,000해 앞 것으로 밝혀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곳 소로마을에서 나온 볍씨를 서울대 연구소와 유에스 지오크린 연구실에서 숯남같은자리밑숫(탄소동위원소)으로 재어보니, 이제부터 13,000해~15,000해 앞 것으로 밝혀졌어요. 땅속에서 나온 볍씨 가운데 가장 늦은 것조차 양쯔강 언저리 것보다 적어도 2,000해 앞선 것으로 밝혀져 온누리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여태까지 알려진 벼 여름지이 이야기를 통째로 뒤엎어버렸지요. 아직까지 밝혀진 것으로는 우리 겨레가 가장 일찍 벼를 길렀음이 온누리에 드러났던 거죠.

그래서 그런지 벼를 나타내는 우리말은 어느 겨레말보다 넉넉해요.

씨나락, 볍씨, 모, 벼, 나락, 우캐, 쌀, 등겨, 왕겨, 뉘, 짚, 북대기, 밥, 메, 죽, 미음, 누룽지, 고두밥, 무려 열여덟 낱말이나 되어요. 어느 나라말에 벼나 쌀을 나타내는 말치고 이렇게 넉넉한 말들이 있을까?

 

  그런데도 한자말을 써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우리말이 그림씨나 어찌씨는 많은데 이름씨가 모자라 한자를 들여다 썼고, 그래서 오늘날도 한자말을 이어 써야 한다고 내세워요. 얼핏 보면 이 말도 맞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한자말이 들어와 자리 잡을 때는 반드시 우리말 몇 낱을 잡아먹고 자리 잡았으니까요. 한 가지 보기를 들면 한자 ‘산’이 들어와 우리말 다섯을 잡아먹어요. 먼저 메를 잡아먹고, 다음으로 갓(메 가운데 나무나 풀을 가꾸는 메)을 잡아먹고, 재(마을 뒷메, 마을을 지켜주는 메), 배(아주 깊은 멧골), 덤(낭떨어지 메)을 잡아먹었지요.

이렇듯이 오늘날 우리말에 들어와 자리잡은 한자말은 거의 모두 우리말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말 이름씨가 모자란 듯이 보입니다.

 

  사람살이에서 새로 찾아내거나 만들어낸 것을 나타낼 우리말이 없어서 넘말(외래어)을 들여다 쓰는 것은 말살이를 넉넉하게 해주니까 마땅히 받아들여 써야지요. 이를테면 버스나 카드처럼요. 옛날에 한아비들이 호미나 빵이나 메주 같은 넘말을 받아들여 우리말 되게 해 썼듯이 오늘날에도 들온말을 받아들여 우리말로 자리잡게 해 써야지요.

그런데 우리가 요즘 많이 쓰는 한글왜말들은 멀쩡한 우리말을 몰아내고 자리 잡았기 때문에 우리말을 더럽히고 우리 얼을 어지럽혀요.

또 어떤 이들은 우리말에 알록달록하다, 누리끼리하다 같은 꾸밈씨와 그럭저럭 알쏭달쏭 같은 어찌씨는 넉넉하지만 이름씨는 턱없이 모자라 한자말이 들어왔다고 우기기도 하지요. 한 가지 말에 어찌씨, 꾸밈씨는 넉넉한데 이름씨는 모자라는 그런 말이 있을까요? 이것은 틀림없이 한자말에 잡아먹히기 어려운 어찌씨와 꾸밈씨는 살아남았고 잡아먹히기 쉬운 이름씨는 엄청나게 잡아 먹혔음을 드러내는 것일 거예요.

 

  둘째, 우리말은 뜻이 깊고 거룩해요.

그래서 우리말은 우리겨레 가슴을 울리고 뭉클하게 하지요.

오늘날엔 고맙다란 말보다 감사하다란 말을 훨씬 더 많이 쓰고, 더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땡큐’라고 까지 해요.

  우리말 고맙다는 곰에서 왔고, 곰은 ㄱ.ㅁ에서 왔어요.

우리 겨레는 하늘이 해와 달을 비추고 비를 내려 살려주고 땅이 온갖 낟과 남새, 푸나무를 길러 우리 겨레를 먹여 살린다고 믿어왔지요. 하늘이 돕는 것은 하늘서낭(천신)이 맡아하고 땅이 돕는 것은 땅서낭(지신)이 맡아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하늘서낭(환웅)과 쑥과 마늘을 먹고 굴속에서 온 날을 넘긴 곰겨집(웅녀), 곧 땅서낭은 짝을 이뤄 배달임금(단군)을 낳으니, 바로 우리 겨레 삶이 비롯되었다고 믿었어요. 여기서 곰은 우리를 먹여 살리는 땅 서낭을 말하지요.

고맙다는 ‘곰답다’에서 왔는데 당신이 저를 먹여 살려주는 곰과 같은 분이란 뜻이어요. 이런 깊은 뜻을 가진 ‘고맙다’란 말과 입술만 달싹거리거나 말끝마다 내뱉는 ‘감사하다’와는 그 뜻하는 바가 하늘과 땅처럼 달라요. 이런 줄을 모르고 오히려 거꾸로 어른들한테는 감사하다고 해야지 고맙다고 말하면 뭔가 모자란 듯한 낮은말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어요.

  우리말 사람은 ‘살다’에서 줄기 살+암(이름씨 만드는 씨끝), 곧 살암->사람이 되었대요. 닫다(달리다 옛말)에서 닫+암+쥐 닫암쥐 ->다람쥐가 된 것처럼요. 다람쥐란 말뜻이 “쥐 가운데 가장 잘 달리는 쥐”란 뜻이듯이 사람은 모든 목숨 가운데 가장 잘 사는 목숨붙이란 뜻이고요. 그러므로 사람은 함부로 살 수도 함부로 죽을 수도 없이 잘 살아야 하는 목숨이에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돈이 많으면 높은 자리에 있으면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 잘 사는 걸까요.

  마음이 노엽거나 누구를 미워하거나 없는 것을 턱없이 바라거나 근심 걱정할 때는 우리가 괴로워요. 그러나 마음이 언제나 따뜻하고 흐뭇하여 사랑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 남 잘 되는 걸 기뻐하는 마음, 늘 고른 마음일 때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 홀가분해요.

우리말 ‘사람’은 바르게 잘 사는 목숨을 일컫는다고 옛 한아비(선조)들이 그런 뜻으로 말을 만들고 말뜻에 맞춰 살아왔어요. 이런 거룩한 말 ‘사람’을 두고 인민이니, 민중이니, 피플이니, 시민이니 민초니 하며 ‘사람’보다 낮은 뜻을 지닌 넘말들을 더 좋아하는 것도 우리말이 지닌 깊은 뜻을 몰라서 그렇겠지요.

 

 셋째 우리말은 아주 쉬워요. 누구나 배우기 쉽고, 익히기 쉽고 서로 뜻을 주고받기가 쉬어요.

우리말로 이야기를 나누면 뜻이 잘 다가와 사람 사이에 마음 나누기(왜말로 소통하기)가 쉽고, 저절로 되어요. 그래서 우리말이고, 우리 겨레말이고, 나랏말이고, 어미말이지요.

새터를 한자로 ‘신기’라 하는데 우리겨레는 새로 생긴 마을엔 새터나 새말이란 이름을 많이 붙였어요. 새터 마을 이름을 한자로 신기라 적었는데 글말이던 신기를 입말로까지 쓰면서 신기라고 부르는 데가 더러 있어요. 왜사람들이 와서는 다 신기라고 적었고요 그런데 신기라 부르는 것 보다, 새터라고 부를 때 그 이름이 더 가슴에 와 닿지 않아요? 이게 우리말이어요.

 

  넷째, 우리말은 고르지요(평등해요).

우리말은 낱말수가 많아 말이 넉넉하지만, 쓸데없는 말을 많이 만들어 쓰지는 않았어요. 우리말에는 사람이 사는 곳을 ‘집’이라 부르는데 임금이 살든 벼슬아치가 살든 돈 많은 백성이 살든, 거지가 살든 사람이 사는 곳은 다 한결같이 ‘집’이에요.

그런데 한자말에는 집을 나타내는 말이 훈몽자회에 올라 있는 말만 해도 22 낱말이나 되어요. 임금이 살면 궁, 궐, 신, 전이라 불렀고 옥, 택, 가, 방, 청, 해, 려, 사, 실, 당, 루, 각, 정, 무, 랑, 하, 재, 원이 다 집을 뜻하는 말이어요. 그렇더라도 궁궐은 우리말로 임금집이지요.

 

  이런 빼어난 우리말을 살려 쓸 때 우리 겨레만 새로 살아나는 게 아니라 뭇 겨레가 함께 되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 센나라, 힘센 겨레들 하는 짓을 보면 제 겨레, 제 나라만 잘 먹고 잘 살면 다른 나라 다른 겨레는 구렁텅이에 빠져도 괜찮고 아니 때로는 어떻게 하면 구렁텅이에 빠뜨려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할까 싶은 짓도 마다않고, 더러는 빼앗든지 속이든지 해서라도 제 배만 부르면 될 것처럼 온누리를 휘저어 끌고 가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모든 겨레를 함께 잘 살게 해온 거룩한 얼을 가진 우리 겨레 안에서조차 이런 미친 짓거리가 좋은 줄 알고 따라 하려는 어리석은 이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그래서 무슨 아홉 번째나 열한 번째로 센 나라에 끼워준다느니, 그건 좋은 일이니 받아도 된다느니 하는 어리석은 생각들을 하고 있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텐데...,

도대체 그 센 나라들이란 게 어떻게 해서 센 나라가 되었지요?

처음에는 후려쳐 빼앗아서, 다음에는 쳐들어가서 땅 뺏고 돈 뺏고 온갖 값나가는 것 뺏어서, 그러다가 그냥 뺏기 어려울 땐 속여서 뺏고 왕창 바가지 씌워 돈벌어 센 나라 된 거 아니에요? 바로 이른바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와 이웃나라한테 저질렀던 짓이고, 내노라하는 제국주의 나라들이 걸었던 길이고, 그 속내는 뺏어서 배 채웠던 것이지요. 그런 나라들 틈에 끼워 준다고 좋아라 한다면 우리 겨레도 앞으로 힘없는 나라 것 뺏어먹고 으스대려는 줄에 끼고 싶다는 말인데, 이웃 힘없는 나라 위에 으스대어 무슨 좋은 일이 있겠어요? 한 하늘 아래 같은 사람으로 살면서 이웃겨레가 배고픈데 우리만 배부르다고 우리 겨레 사람들이 참말로 즐거울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라도 얼을 차려, 우리가 종살이할 때 거기서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썼듯이 오늘날에도 종살이, 가웃 종살이하는 나라들 많고, 어려운 살림살이 하는 겨레들 많은데, 좀 먹고 살만할 때 이런 이웃나라, 이웃겨레 도우며 살아갈 때 온 누리 모든 겨레가 함께 손잡고 잘 사는 누리를 이룩해 갈 수 있지 않을까싶어요. 이것이 바른 사귐(외교) 아닐까요? 우리 겨레는 아득한 옛날에도 그렇게 살았고, 여태까지 그렇게 살았으니, 우리 겨레가 앞으로도 더욱 어려운 나라, 힘없는 겨레와 가깝게 사귀며 서로 돌보면서 오순도순 함께 살아가야겠지요.

 

한실 글쓴이 purnhans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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